언론 회복 프로젝트 <공범자들>

8화. '조인트 폭로' 김우룡, 뒤늦은 반성

2017-06-16

유재천, 김우룡, 유의선

왼쪽부터 유재천(전 KBS 이사장, 전 서강대 교수), 김우룡(전 방문진 이사장, 전 한국외대 교수), 유의선(방문진 이사, 이화여대 교수)

사진에 보이는 세 사람은 언론학계에서 나름 이름이 있는 학자들입니다. 유재천 교수는 서강대에서 언론학을 가르쳤고 일찍이 1990년에 언론학회장을 역임했습니다. 김우룡 교수는 원래 MBC PD였는데 학계로 가서 한국외국어대 교수로 오래 재직했습니다.

두 사람 다 한 때는 공영방송이 정권의 영향력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주장을 했던 학자들입니다. 유의선 교수는 2013년에 방송학회장을 역임한 뒤 방송문화진흥회 이사가 된 인물입니다.

이 세 사람에게는 또 다른 공통점이 있습니다. 권력의 방송장악을 도운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이들은 나란히 언론노조가 발표한 60명의 부역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김재철이 청와대에서
조인트 맞고..

김우룡 전 방문진 이사장은 셋 중에 가장 유명한 '학자 출신' 공영방송 파괴자일 것입니다. 그는 엄기영 MBC 사장을 처참하게 쫓아내고 그 자리에 김재철 사장을 앉혔습니다. 엄 사장을 쫓아내기 위해 열었던 이사회에 MBC 노조위원장이 찾아가 언론자유를 침해하지 말라고 외치자, 김우룡 이사장은 이렇게 점잖게 훈계했지요.

"지금 노조위원장이 언론자유, 언론자유 합니다만, 공정한 언론을 세우겠다는 것은 방문진 이사들도 초지일관 같은 뜻이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김우룡 전 방문진 이사장 (2009.10.)

하지만 '초지일관' 언론자유를 세우겠다고 약속했던 김우룡 이사장은 결국 김재철 씨를 불러들였고, 이후 MBC에서는 간부급에 대한 피의 숙청이 벌어졌습니다. 김재철이 휘두른 칼날에 MBC가 전쟁통처럼 난리가 난 직후 김우룡 이사장은 <신동아> 기자와 인터뷰를 했습니다. '김재철 사장이 청와대에 불려 가 조인트 맞고 깨진 뒤 좌파를 정리했다'는 충격적인 내용이었죠.

"김우룡 방문진 이사장의 MBC 진압작전 8개월".. <신동아>의 보도 제목

그 기사가 난 뒤 김 이사장은 사표를 내고 사라졌습니다. 그는 <공범자들>을 만들면서 가장 만나고 싶은 인물 중 한 명이었지만 종적을 찾기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그런데 놀랍게도 그가 MBC 출신 인사들과는 교류를 하고 있더군요. MBC 드라마 PD 출신 전직 임원의 출판기념회장 앞에서 그를 만났는데, 만난 김에 몇 가지 물어봤습니다.

김재철 씨한테
잘려가지고요

김 이사장은 한눈에 저를 알아봤습니다. 저는 근황을 전했지요.

"김 이사장님, 제가 MBC에 있다가 지금 뉴스타파에 와 있습니다. 김재철 씨한테 잘려가지고요." 

갑작스런 질문과 카메라의 등장에 그는 잠시 당황하는 듯했지만 이내 평정심을 되찾았습니다. 그래서 오랫동안 궁금했던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때가 벌써 7년이 지났습니다. 이사장님이 엄 사장을 내보내고 김재철 씨를 들이고 나서 MBC에 상처도 많고 사건도 많았습니다. 그때 일에 대해서 MBC 사람들이나 국민들한테 하실 얘기가 혹시 있으신지요? 이제 시간도 좀 지났고요.."

김우룡 전 방문진 이사장에게 질문을 던지는 최승호 PD

그는 잠시 생각에 잠기는가 싶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뭐 특별히 할 얘기가 있겠어. 안타깝지. 어쨌든 MBC가 한국 콘텐츠 생산의 본고장이라고 할 수 있었고 드라마왕국이라는 말도 들을 만큼 명성이 높았는데.. 지금 상당히 어려움을 겪고 있잖아. 그런 면에서는 MBC에 친정 둔 사람 입장에서 참 안타깝지."

김우룡 전 방문진 이사장

김우룡 이사장은 김재철 사장을 선택해서 데려온 장본인이었습니다. 저는 거듭 물었습니다.

"김재철 사장을 결국 이사장님이 임명하셨는데요. 그분이 상당히 좀 독하게 하셨거든요."

"김재철 그 사람을 겉으로만 알고 속을 잘 몰랐던 거야. 그 사람의 성향이나 경영 방향이나 이런 걸 잘 몰랐지 겉으로만 알았을 뿐이니까. 그런 면에서는 어쨌든 그 양반을 선택한 데 대한 도의적 책임이 내게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김우룡 전 방문진 이사장

"사실 김재철 사장은 이사장님이 선택한 게 아니라 이명박 정권에서 선택한 거잖아요."

"정권의 선택이다 이렇게 딱 단정적으로 얘기할 수도 없고, 그러니 선택이 적절하지 않았으면 그 책임이 이사장한테도 있는 거고..또 정권에 맞서지 못한 건 전적으로 이사장의 책임이에요. 그 책임을 누구에게 미룬다는 건 온당한 일이 아닌 것 같아요."

그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자면 그는 자신이 김재철 사장을 받아들인 것에 대해 후회하고 있었습니다. 과거 드라마 왕국의 명성을 자랑하던 MBC가 지금처럼 쪼그라든 것에 자책감을 느끼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글쎄요. 시류가 변했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MBC PD 출신으로서 자신이 MBC를 무너뜨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진정한 자성일까요? 짧은 만남으로는 구별하기 어려웠지만 흔치 않은 반성적 토로였습니다.

당신이 언론학자야?

김 이사장을 만나기 한 달 전쯤 저는 언론정보학회에서 주최한 학술대회에 참가했습니다. 기조연설자로 초청돼 갔는데 '공영방송을 어떻게 복원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유재천, 김우룡 두 사람에 대한 <공범자들> 영상을 틀었죠.

최승호 PD

그중 유재천 전 교수에 대한 영상은 그가 KBS 이사장 시절 경찰 투입을 요청해 KBS 사원을 짓밟고 정연주 사장을 해임 의결한 이른바 '8.8 사태' 당시 찍힌 것입니다. 경찰과 부딪쳐 갈비뼈가 부러지는 몸싸움을 했어도 결국 이사회가 정 사장을 해임하자 사원들은 유재천 이사장을 찾아갔습니다. 최소한의 학자적 양심에 호소하고 싶었던 거지요.

하지만 유재천 이사장은 청경의 도움을 받아 도망갔습니다. KBS 기자, PD들은 유재천의 등 뒤에 "당신이 언론학자냐?"고 외쳐 물었습니다.

정연주 전 KBS 사장을 해임하는 날 KBS 구성원들과 대치하는 유재천 전 이사장 (가운데 빨간 원으로 표시)

학술대회장에 언론인들의 항의의 절규가 가득 차자 보고 있던 학자들은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았습니다. 게다가 학술대회가 열리고 있던 장소가 유재천 교수가 오래 재직하며 후학을 기른 서강대학교였으니 어떠했겠습니까.

뒤풀이에서 유재천 이사장의 제자라고 밝힌 한 중견학자는 거듭거듭 자괴감을 토로했습니다. 그는 ‘당시 제자들이 스승에게 고희 기념 논문집을 만들어 드리려고 준비 중이었는데, 그 사태가 일어난 뒤 중단됐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유재천 이사장은 여전히 잘 지내고 있는 듯 보입니다. 그는 상지대 총장을 거쳐 올 초에는 이북5도가 위촉하는 행정자문위원장이 되어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습니다.

언론학자의 궤변

김우룡 전 방문진 이사장이 과거의 행위를 후회하고 있는 지금도 똑같이 권력을 편들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유의선 방문진 이사입니다.

그는 이화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로 방송학회장을 역임한 인물입니다. 우리는 방송학회장이라면 방송학계에서 존경받는 원로학자를 연상하고, 당연히 언론자유를 기장 중요한 원칙으로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유의선 교수는 방문진 이사가 된 뒤 사사건건 MBC 경영진의 편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김장겸 씨를 MBC 사장으로 뽑았습니다.

"문재인은 공산주의자"라는 말을 한 고영주 이사장이나 뉴라이트 김광동 이사 같은 인물들이 박근혜 정권을 위해 견마지로를 다 하는 것은 이해가 가고 별로 미운 생각도 안 듭니다. 원래 그런 이념에 빠져서 살아온 사람들이고, 세상이 밝아지면 어둠이 사라지듯 보이지 않게 될 인물들입니다.

그러나 유의선 교수 같은 인물은 이중적입니다. 겉으로는 자신이 대단한 언론학자인 것처럼 행세하면서 막상 방문진에 들어가면 사사건건 공영방송 파괴자들의 편을 듭니다. 그 과정에서 자기가 배운 알량한 지식을 꺼내 자신의 행위를 합리화합니다.

유의선 교수를 만나 질문을 던지는 최승호 PD

지난 대선 당시 문재인 대통령이 MBC에서 후보자 토론을 하면서 MBC를 비판하자 MBC가 뉴스를 동원해 맹비난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여러 언론학자들이 뉴스의 사유화라는 비판을 하자 유의선 교수는 자신이 존경하는 젤레즈니라는 법학자가 '언론사에 대한 권력자의 발언은 조심스러워야 한다'는 말을 했다면서 합리화를 시도합니다. 그는 '방송사가 권력자의 비판에 대해 해명 보도를 하는 것은 당연한 대응권'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백 보 양보해 해당 토론 이후 MBC가 만약 '문재인 후보의 주장은 사실과 어긋난다'고 입장을 내고 그것을 MBC뉴스가 간명하게 인용해 보도하는 것으로 그쳤다면 유 교수의 말을 받아들일 수도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MBC뉴스는 토론 다음날 무려 3꼭지로 문재인 후보를 비난했습니다. 그 이후에도 문재인 후보 측에 흠집 내고 타 후보를 띄우는 보도를 계속했습니다.

누가 보더라도 문재인 후보를 공격하기 위한 보도였습니다. MBC가 C급 방송으로 전락했기에 망정이지 과거의 영향력이었다면 치명상을 입힐 수 있는 보도였습니다. 그런데 이 정도의 일탈을 유의선 교수는 '권력에 대한 대응권 행사'라고 주장한 것입니다.

왜 나만 갖고 그래요?

이명박 정권이 4대강 사업이라는 단군 이래 최악의 사기극을 밀어붙일 때도 부역한 학자들의 주장을 앞세웠습니다. 학자들을 앞세우면 대중들은 그 주장에 일리가 있는 것처럼 착각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명박근혜 정권의 언론장악에 동조한 소위 학자들은 공영방송 파괴의 선봉대라고 봐야 합니다.

유의선 교수는 억울할지 모릅니다. 김장겸 씨를 사장으로 뽑았을 때 제가 방문진을 찾아가 유 교수에게 "도대체 방송학회장을 지낸 분이 왜 그러시냐?"고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는 '왜 나만 갖고 그러냐'고 불평하더군요. 그래서 오늘 유 교수 말고도 유재천, 김우룡이라는 선배 학자들이 있다는 것을 함께 기록해두는 겁니다.

 MBC에 김장겸 사장이 선임되었던 2017년 2월 23일, 방송문화진흥회 앞에서 태극기를 흔드는 사람들

다만 유 교수가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김우룡 전 이사장은 자신이 한 행위에 대해 후회하는 말을 했고 유재천 전 이사장은 지난해 '공영방송이 권력의 호위병 노릇을 했다'는 언론학회, 방송학회, 언론정보학회의 성명에 484명의 학자 가운데 한 명으로 서명했다'는 것입니다.

유의선 교수는 아마도 마지막까지 남아 공영방송 파괴세력을 역성들고 그들에게 파괴의 논리를 제공한 최후의 어용학자로서 기록될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언론학자 여러분께 여쭙고 싶습니다. 정말 이래도 되는 겁니까?

학계에서도 이런 분들의 행위에 대해 기록하고 역사적 평가를 내려 다시는 '언론학자가 언론을 망친다'는 소리가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하지 않을까요?

저는 영화 <공범자들>을 만들어 전국의 언론학도들에게 보여주고 싶습니다. 현재뿐 아니라 미래의 언론학도들에게도 경계가 되도록 말입니다.

언론 회복 프로젝트 <공범자들>
1화. '역사적 오보'내고 승승장구
2화. 국정농단의 공범, MBC농단의 주범
3화. KBS 기자들이 수요일 밤에 모인 이유
4화. '피의 판사'와 안광한 MBC 사장
5화. KBS 사장님과 머리끄덩이의 추억
6화. MBC 암흑시대 9년 그리고 김장겸
7화. 세월호 원혼 '길완용'을 내쫓다
8화. '조인트 폭로' 김우룡, 뒤늦은 반성
9화. "이명박 대통령, 4년만에 뵙습니다"
10화. '공범자들'을 향한 국민의 공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