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박근혜 정권 9년은 다시는 떠올리기 싫은 시간입니다. 그러나 딱 하루,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갈 수만 있다면 가서 모든 것을 바꿔놓고 싶은 날이 있습니다. 2014년 4월 16일입니다. 대한민국 거의 모든 언론이 '전원 구조' 오보를 한 그날, 그래서 거의 모든 언론인이 기레기가 된 그날로 돌아가서 그 치명적인 오보를 막고 싶습니다.
저보다 훨씬 더 이 날을 한스럽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한승현 씨. 그는 세월호 사건 당시 목포 MBC 보도부장이었지만 지금은 회사를 나왔습니다. 개인적인 이유도 없진 않지만 세월호 사건 이후 언론인으로서 긍지를 잃어버린 것이 회사를 나온 가장 큰 이유라고 합니다.
사건 당일 그는 취재기자를 사건 현장으로 보냈습니다. 사건 현장 부근의 섬에서 자란 목포 MBC 기자는 배를 빌려 가장 먼저 현장으로 접근했습니다. 그리고 소식을 전해왔습니다. 많은 승객이 탄 채로 세월호가 침몰했고 대형 참사가 우려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때는 서울 MBC를 비롯한 대부분의 언론들이 '전원 구조' 오보를 하고 있던 상황이었습니다. 한승현 보도부장은 즉시 서울 MBC의 박상후 전국부장에게 '전원구조가 아니'라는 취재 내용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박상후 부장은 '알았다'고 하고는 전화를 끊었다고 합니다. MBC 보도는 그 뒤로도 전혀 변하지 않았습니다.
보도부장이 전화를 했는데도 서울 MBC의 보도 기조가 바뀌지 않자 이번에는 김선태 보도국장이 나섰습니다. 김 국장은 당시 사건 현장에 있던 해경에게 전화를 건 뒤 '주변에 사람들이 있어 답변하기 곤란할지 모르니 예, 아니오로만 답하라'고 하면서 몇 가지를 물었다고 합니다.
"전원구조라는데 전원구조가 됐습니까?"
"아니오."
"지금도 배안에 사람들 많이 있습니까?"
"네."
"백명 이백명 이상입니까?"
"네."
"그러면 전원구조했다는 건 오보입니까?"
"네."
김 국장은 그 뒤 서울 MBC 박상후 부장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서울에서는 이게 끝이라 생각하는데 그게 아닙니다. 이게 시작입니다. 배 안에 몇 백 명 있는지 모르지만 최소 백 명 이상 인원들이 선실 안에 있는데 전원구조라니 말이 안 됩니다. 우리가 다 알아볼 만큼 했습니다."
그는 해경 구조대원과 통화한 사실도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나 박상후 부장의 반응은 "알겠습니다" 뿐, 보도는 바뀌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것으로도 끝이 아니었습니다. 목포 MBC의 다른 기자는 사건 현장에서 구조를 하고 있던 공무원의 전화번호를 서울 MBC 전국부에 전달했다고 합니다. '우리를 못 믿으면 직접 확인해보라'면서 말입니다. 그렇게 거듭 간절하게 '전원 구조는 오보'라고 전했지만 서울 MBC는 요지부동이었습니다.
아무리 말해도 듣지 않자 한승현 보도부장은 육두문자까지 써가며 박상후 부장을 질타했다고 합니다. 을인 지방 MBC 간부가 갑인 서울 MBC 간부에게 욕까지 했다는 것은 당시 그가 얼마나 절박한 느낌이었나를 말해줍니다.
결국 서울 MBC는 중앙재해대책본부가 집계 오류를 정정한 뒤에야 목포 MBC를 연결해 수백 명의 희생자가 생길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보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오후 4시 30분이 다 돼서였습니다. 오전 11시경에 제대로 보도할 수 있었던 것을 5시간 이상 걸려서야 바로잡은 것입니다. 김선태 국장은 취재진을 만나 자신의 죄책감을 토로하며 울먹였습니다.
"제가 지금 보도국장 그만두고 2년이 좀 넘었습니다만은 지금도 가슴 한 구석에 그런 게 있어요. 만일 그때 전원 구조가 아니라고 방송이 나가서 단 한 명이라도 먼저 구조할 수 있었다면..정말 그런 생각을 하면 지금도 막 울컥하면서 그런 게 있어요. 저도 죄인 같은 그런 느낌이 듭니다."
세월호 참사에서 언론의 역할을 조사해온 김진이 전 세월호 특조위 언론팀장에 의하면 박상후 전국부장은 나중에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에 진술서를 한 장 냈습니다. 이 문건에서 박상후 부장은 "당시 목포 MBC의 보고는 '참고했으면 좋겠다'는 전언 수준이었다"고 밝혔다고 합니다. 4-5차례나 같은 내용을 기자, 부장, 국장이 거듭해서 간곡히 전달했는데, 게다가 확인해보라는 공무원 전화번호까지 전달했는데도 그는 '참고했으면 좋겠다는 수준'이었다고 말한 겁니다.
김진이 팀장은 MBC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MBC가 설명한 바에 따르면 전원구조 오보는 'MBN 기자가 전원 구조라고 자기 회사에 보고하는 것을 옆에서 들은 MBC 기자가 똑같이 전원 구조라고 보고해서 이를 보도했다'는 겁니다. 다른 회사인 MBN의 보고 내용은 확인하지도 않고 보도하면서, 같은 회사인 목포MBC가 여러차례 근거까지 대가며 보고한 내용을 무시한 이유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냐고 김 팀장은 묻습니다.
여러분은 이해가 되십니까?
한승현 부장이나 김선태 국장은 당시 서울 MBC가 권력의 지침을 받아서 움직이고 있었던 게 아니겠냐고까지 생각합니다. 기자라면 누구나 그런 보고를 들으면 확인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기 마련인데 '알겠다'는 말만 반복했던 박상후 부장을 비롯한 서울 MBC 보도국 간부들의 행태에 대해 그렇게밖에 이해할 수 없다는 겁니다.
저는 무슨 지침이 없었더라도 그들은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전부터 MBC는 이심전심의 자발적 동의에 의해서 권력을 추종하는 보도를 해왔기 때문입니다.
박상후 부장이나 당시 보도국장이던 김장겸 씨(현재 MBC 사장) 이진숙 보도본부장, 안광한 사장이 목포 MBC의 보고를 듣지 않았던 이유는 '수백 명이 죽을 수도 있다'는 그 보고내용이 권력에 불편한 내용이었기 때문일 겁니다. 수백 명의 목숨이 위험하다는 소식은 박근혜 대통령이 좋아할 뉴스가 아닙니다. '만약 목포 MBC의 보고대로 내보내서 청와대를 놀라게 했다가 아니라는 결론이 난다면? 그렇게 되면 우리는 위험해진다'고 판단했을 거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이런 어마어마한 역사적 오보를 해놓고 MBC 안광한 사장은 'MBC의 세월호 보도는 격을 높인 방송'이라고 자화자찬했습니다. 김장겸 보도국장은 세월호 유족을 '깡패'라고 불렀다는 말까지 있습니다. 박상후 전국부장은 세월호에서 구조작업을 하던 잠수사가 숨지자 '유족이 작업이 더디다고 압박해서 그런 일이 일어난 것처럼' 묘사한 보도를 했습니다.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가 전원 구조 오보에 대한 조사를 하기 위해 출석을 요청했지만 안광한, 이진숙, 김장겸, 박상후 등 모든 MBC 관련자들은 출석을 거부했습니다. 동행명령장도 발부했지만 끝내 거부했습니다.
이번에 제가 박상후 부장에게 인터뷰를 시도했는데 '질문하지 말라'며 아예 답변을 거부하더군요. 이들은 세월호라는 국가적 참사의 진실을 규명하고자 시작된 조사를 언론자유라는 이름으로 거부했습니다. 언론으로서의 최악의 실패를 한 당사자들이 언론자유 뒤에 숨어 방종을 한 대표적인 사례로 기록될 겁니다.
촛불이 대한민국을 바꿨지만 이들은 여전히 MBC를 장악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들은 다시 언론자유라는 이름을 방패로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며 공영방송 MBC의 등골을 빼먹으려 할 것입니다.
위에서 언급한 안광한, 이진숙, 김장겸, 박상후 등은 언론인들이 '이명박근혜 정권에 영합해서 언론을 망친 언론 부역자'로 선정한 60명 가운데 4명에 불과합니다. 영화 <공범자들>은 부패한 권력의 수많은 공범들이 '언론'의 탈을 쓰고 무슨 짓을 했는지 추적하고 기록해 역사적 단죄를 하려는 영화입니다.
우리는 타임머신을 타고 2014년 4월 16일로 돌아가 모든 것을 바로잡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할 수는 있습니다. 우리는 이 영화를 통해 시민의 힘으로 언론을 정화하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