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환영 PD를 아십니까? 현재 백석대 특임부총장을 맡고 있는 길환영 씨는 한 때 KBS에서 아주 잘 나가던 PD였습니다. '추적 60분' 등 KBS의 주요 시사 교양 프로그램을 두루 섭렵하고, CP(책임프로듀서)-EP(주간)-지역방송총국장-제작국장-제작본부장-부사장-사장으로 이어지는 KBS 내부 '사다리'를 끝까지 올라간 인물입니다.
그런데 그에게는 2개의 꼬리표가 붙어있습니다. KBS 공채 PD 출신 최초의 사장, 그리고 임기 중 KBS 구성원들의 손에 의해 쫓겨난 KBS 사장. 명예와 불명예 꼬리표가 동시에 붙은 셈입니다.
그러나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2개의 꼬리표 모두 불명예에 가깝습니다.
공채 PD출신 첫 KBS 사장, 이 타이틀을 얻기 위해 그가 쏟았던 노력을 보면, 정말 입이 떡 벌어질 만 합니다. MB정권 시절인 2010년, 콘텐츠본부장을 맡으면서 1년 남짓 동안 무려 177편의 관제성 특집프로그램을 양산했고, 특히 MB정권 스스로 최고의 외교성과라 추켜세웠던 G20 특집의 경우 총 방송시간만 3,300분에 달했습니다.
또, 2010년 지방선거 전 천안함 특집 북풍몰이에 이어 2011년 이승만, 백선엽 특집 방송으로 친일미화, 독재찬양에 앞장서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관제성 특집방송을 주도하면서 본부장 신임투표에서 88%라는 사상 최고의 불신임을 받기도 했습니다.
결국 2012년 말, 그는 현 고대영 KBS 사장, 홍성규 전 방송통신위원 등 KBS 기자 출신의 다른 후보들을 제치고 사장으로 취임합니다. 정연주 사장 강제해임이후 MB정권과 박근혜정권은 이른바 내부 출신 사장을 통해 KBS에 대한 통제를 강화했습니다. 이병순(기자), 김인규(기자)에 이어 길환영(PD) 사장이 낙점을 받은 것입니다.
관제 특집방송을 주도하며 후배PD로부터 '길완용'이라는 비아냥까지 들어야 했던 길환영 사장..청와대를 등에 업고 거칠 것 없이 KBS를 농단하던 그의 행보도 사장취임 1년여 만에 끝이 납니다.
바로 세월호 보도 참사 때문입니다.
세월호 참사는 이명박근혜 정권 9년을 거치면서 그야말로 '한줌' 밖에 남아 있지 않던 '공영방송인으로서 최소한의 자존감'마저 완전히 무너뜨려버렸습니다.
2014년 4월 16일, 참사 당일 전원구조 오보를 시작으로 이후 구조과정에 대한 검증 없는 받아쓰기, 정부와 대통령 책임론에 대한 비판자제 등 KBS의 세월호 보도 역시 '참사' 그 자체였습니다.
특히, 어버이날이던 5월 8일 세월호 유족들이 KBS로 직접 찾아와 경찰이 세운 차벽을 사이에 두고 울부짖던 순간, 우리 모두는 죄인이 됐습니다. 이 항의방문은 김시곤 당시 보도국장의 '세월호 참사의 교통사고 비교 발언'으로 촉발된 것처럼 보이지만, 세월호 참사 직후부터 이미 예견된 것이었습니다.
다음은 2014년 5월 8일, 세월호 참사이후 진도와 팽목항 등에서 취재를 해오던 KBS 막내 기자들이 사내게시판에 올린 수많은 글들입니다.
'KBS를 어떻게 믿어요' 안산에서 취재한 13일 동안 매일같이 들은 말입니다. 장례식장에서, 희생자 합동분향소에서, 안산 동네 곳곳에서 'KBS'라는 이유로 유가족과 시민들은 인터뷰를 거부했고 질책을 넘어 크게 분노하기도 했습니다.
지나가시던 많은 분들이 욕을 하시더군요. 'KBS 개새끼들' '이 새끼들, 보도 똑바로 해라' 'KBS 정말 싫어..' 욕한 분 옆에 서있던 친구 분이 제게 오셔서 죄송하다고 하네요. 죄송하긴요..제가 죄송합니다. 저 또한 진도에서 침묵하고 있었던 한 명이었기에..
매 맞는 것이 두려워 실종자 가족들을 만나지 않고 기사를 썼습니다. 매일 보도정보시스템에 업데이트 되는 세월호 관련 연락처 어디에도 유가족이나 실종자 가족과 관련된 연락처는 없었습니다. 물어봐도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리포트에서도 그들의 목소리는 점점 사라져갔습니다. 그런데도 위에서는 '아이템들이 너무 실종자 입장으로 치우쳤다'며 전화를 하더군요.
유가족들이 구조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울부짖을 때 우리는 냉철한 저널리스트 흉내만 내며 외면했습니다. '현장'이 없는 정부와 해경의 숫자만 받아 적으면서요. 우리가 유족들과 '동화'됐다고요? 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적어도 '정권'이나 '정부'와 동화된 일부 기자들보다는 낫지 않나요?
왜 현장을 있는 그대로 보도하지 않는 건가요. 대통령의 첫 진도방문 리포트는 진도체육관에서 가족들의 목소리를 모두 없앴습니다. 거친 목소리의 현장음은 사라지고 오로지 대통령의 목소리. 박수 받는 모습들만 나갔습니다. 대통령의 안산분향소 조문은 연출된 드라마였습니다.
왜 우리뉴스는 대통령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 건가요? 이 나라는 대통령은 없고 물병 맞고 쫓겨나는 총리, 부패하고 무능한 해경, 구원파만 있는 건가요? 대통령은 찬사와 박수만 받아야 하고 아무 책임도 없는 건가요?
세월호 유가족의 통곡소리를 들으며, 그나마 양심적인 저널리스트가 되고자 했던 수많은 젊은 기자, PD들 역시 피눈물을 흘려야 했습니다.
5월 8일 세월호 유가족들의 KBS와 청와대 항의방문 이후, 사태는 급변합니다. 사퇴 압박을 받던 김시곤 당시 보도국장은 기자회견을 열어 길환영 사장과 청와대와 관련된 엄청난 폭로를 하게 됩니다.
혹자는 이를 사표압력을 받은 후 벌인 우발적인 행동으로 치부하기도 하지만, 폭로의 내용과 이후 김시곤 국장의 행보를 보면, 뒤늦은 감은 있지만 나름 진정성 있는 양심고백이었다고 평가합니다.
폭로의 내용은 이랬습니다.
길환영 사장은 세월호 사건 뿐 아니라 평소에도 끊임없이 보도를 통제했다. 윤창중 사건을 톱뉴스로 올리지 말라고 한 적도 있다. 길환영 사장은 언론에 대한 어떤 가치관과 신념 없이 권력의 눈치만 보며 사사건건 보도본부의 독립성을 침해해왔다. 길환영 사장도 스스로 물러나야 한다.
1차 폭로 / 2014. 5. 9, 사퇴 기자회견사장은 BH, 청와대로부터 연락이 왔다며 제게 회사를 그만 두라고 했다. 잠시 3개월만 쉬면 일자리를 찾아보겠다고 회유를 했다. 그러면서 이걸 거역하면 자기 자신도 살아남을 수 없고, 이건 대통령의 뜻이라고 까지 말하며 눈물까지 흘렸다.
2차 폭로 / 2014. 5. 16, KBS 기자협회 총회청와대로부터 전화는 받았다..정부쪽에서는 해경을 비난하지 말 것을 여러 번 요청했다. 구조작업이 진행되고 있으니까 해경 비판을 나중에 하더라도 자제했으면 좋겠다..5월 5일에 사장이 취임 이후 처음으로 보도본부장실을 방문, 사장 주재 작은 모임이 있었는데 보도본부장. 나(김시곤). 취재. 편집주간 4명이 해경에 대한 비판은 하지 말라달라는 지시가 있었다.
2차 폭로 / 2014. 5. 16, KBS 기자협회 총회길환영 사장이 대통령을 모시는 원칙이 있었다. 대통령 관련 뉴스는 러닝타임 20분 내로 소화하라는 원칙이 있었다. 정치부장도 고민 했는데 해외순방 때마다 몸살을 앓았다.
2차 폭로 / 2014. 5. 16, KBS 기자협회 총회나중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김시곤 당시 보도국장에게 직접 전화를 건 청와대 당사자는 바로 이정현 당시 홍보수석이었습니다. 이로써 박근혜 정부 하에서 전방위적으로 이뤄졌던 청와대의 방송장악, 보도통제의 실상과 'KBS 보도국장 - 사장 - 청와대 홍보수석 -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추악한 커넥션의 실체가 백일하에 드러났습니다.
김시곤 국장의 폭로 이후 KBS 구성원들은 피할 수 없는 싸움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사장 퇴진은 물론 보도통제 책임자 처벌, 대통령의 사과를 요구하며 제작거부와 총파업에 돌입했습니다. 물론 퇴로는 없었습니다.
이명박근혜 정권 9년 동안 KBS 새노조는 2008년 사원행동부터 2010년 새노조 총파업, 2012년 언론노조 연대총파업까지 2년마다 제작거부와 총파업으로 맞서 싸웠지만, 살아있는 정치권력과의 모든 싸움이 그렇듯 당시에는 승산없는 싸움이었습니다.
길환영 사장이 스스로 물러날 리도 만무했고, 사장의 해임제청권을 가진 이사회는 여당 추천 7, 야당 추천 4의 구도에서 해임안을 가결하는 것은 박근혜 대통령 하에서는 가능해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 구호 하나만 믿고 싸움을 시작했습니다. 승산없는 싸움이지만 공영방송에 몸담은 자의 숙명이라 생각하고 싸웠습니다.
5월 12일 새노조의 길환영 사장 퇴진요구 성명을 시작으로 기자협회와 PD협회의 제작거부, 5월 15일 사장 신임투표 실시, 5월 19일 출근저지투쟁, 보직간부들의 집단사퇴 등 말 그대로 당시 KBS 구성원들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끝장 투쟁에 돌입했습니다.
신임투표 결과 KBS 조합원의 98%가 불신임했고, 보직을 내려놓고 스스로 물러난 간부만도 300여 명에 달했습니다. 5월 29일 KBS의 양대 노조는 사상 처음으로 동시 총파업에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길환영 사장은 기자회견을 열어, 사장퇴진투쟁이 "좌파 정치노조의 공영방송장악 음모"라며 끝끝내 자진사퇴는 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당시는 6.4 지방선거를 앞둔 상황, 총파업 이후 KBS의 방송파행은 가시화됐고 결국 KBS 이사회는 6.4 지방선거 다음날인 6월 5일, 길환영 사장의 해임제청을 의결했습니다. 표결 결과는 7:4였습니다. 야당추천 이사 4명에 더해, 여당추천 이사 7명 가운데 3명이 해임제청에 찬성표를 던짐으로써 길환영 사장의 퇴진투쟁은 끝이 났습니다.
정권 후반기 국민 여론에 부담을 느낀 박근혜 정부는 길환영 사장이라는 '꼬리'를 자름으로써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드러난 방송장악의 실체를 서둘러 봉합했습니다.
길환영 사장이 쫓겨난 이후, KBS는 달라졌는가?
이 질문은 KBS 구성원에게는 매우 부끄러운 질문입니다. '세월호 아이들이 우리에게 준 마지막 기회'라 여기며 있는 힘을 다해 싸웠고, 끝내 청와대의 눈치를 보며 사사건건 보도에 개입했던 사장은 쫓아냈지만 KBS의 방송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길환영 사장 이후 후임 사장이 뽑히지 않았던 짧은 공백기 동안 '문창극 총리후보 검증' 특종보도로 잠깐이나마 공영방송의 역할을 회복한 적도 있었습니다. 역설적으로 이명박근혜 정권 9년 가운데 그나마 KBS가 국민들로부터 응원을 받았던 때는 '사장'이 공석이었던 바로 그 짧은 시기였습니다.
솔직히 고백하건데, 지금의 KBS는 다시 길환영 해임 이전으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보도의 '길환영'으로 불릴 만큼 보도국장, 보도본부장 시절 불공정 방송으로 기자사회에서 악명을 떨쳤고, 최근 새롭게 '야당 도청 은폐 의혹'의 당사자로 지목된 고대영 씨가 사장으로 버티고 있습니다. 공정방송을 외치며 싸웠던 양심적인 언론인들을 탄압하고, 박근혜 정권에 앞장서 부역했던 간부들 역시 계속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사장 선임과 해임제청권을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아 공영방송 지킴이가 되어야할 이사회 역시, 과거 정권의 편에 서서 방송장악의 나팔수 역할을 했던 인물들로 다수의 이사가 채워져 있습니다.
촛불혁명과 정권교체 이후 이명박근혜 정권 9년동안 켜켜이 쌓여왔던 언론적폐 청산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높습니다. 하지만 과거 정권의 낙하산들은 여전히 또아리를 틀고, 물러날 기미를 보이지 않습니다. 참으로 답답한 상황이지만 또 다시 공영방송 정상화를 위한 긴 싸움을 시작해야 할 것 같습니다.
먼저, 언론장악의 '주모자'와 '공범자'들을 낱낱이 기록하고, 책임을 묻고, 반드시 역사의 심판을 받도록 해야 합니다. 해직언론인 최승호의 영화 <공범자들>은 바로 그 기록의 출발점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언론인 스스로 언론 정상화를 위한 싸움에 직접 나서는 수밖에 없습니다. 국민이 아니라 정권의 편에서 공영방송을 농단했던 이들을 하루빨리 청산하지 않고서는 공정방송은 커녕 공영방송의 존립근거조차 되찾을 없기 때문입니다.
이 기회에 그 어떤 정치권력도 다시는 언론장악의 헛된 꿈을 꾸지 못하도록 언론자유/방송독립/공정방송을 위한 제도적 틀도 바꿔야 합니다.
KBS 새노조도 오는 6월 14일 <고대영 퇴진 끝장 투쟁 선포식>을 열고 새로운 싸움을 시작합니다. 공영방송의 양심적인 언론인들 스스로 이명박근혜 정권 9년의 언론적폐를 청산하고 '국민의 방송'으로 돌아가기 위한 몸부림을 다시 시작합니다. 염치없지만 시민들의 힘이 필요합니다.
글ㅣ권오훈 KBS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