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래 뉴스타파 기자(전 KBS 기자)는 고대영 KBS 사장과 인연이 많다. 그가 고대영 사장과 인연을 아름답게 추억하는 글을 보내왔다. 아래 영상은 그 수많은 추억 중 하나를 담고 있다. 고대영 사장이 국회에서 인사청문회를 했던 날, 김경래 기자가 고대영 사장을 직접 찾아간 것이다. 고 사장은 오랜만에 만난 후배 기자에게 뭐라고 말했을까?
고대영 KBS 사장님!
기억하시죠? 사장님과 정말 많은 추억을 간직한 뉴스타파 기자 김경래입니다. KBS를 그만둔 뒤 재작년 KBS 사장 인사청문회 때 잠깐 뵙고, 이후 연락을 못드렸습니다. 게으르고 모난 천성이 언제나 문제입니다.
벌써 9년이 흘렀습니다. 2008년은 정말 '가슴이 뻐근한' 한 해였죠. (2008년 8월 8일 KBS에 난입한 경찰과 몸싸움을 하다 갈비뼈가 부러진 것 때문은 절대 아닙니다.)
정연주를 비롯한 좌파 좀비 세력들이 장악한 KBS를 탈환하기 위해 이명박 대통령님은 국정원과 검찰, 경찰을 총동원해 전력을 다해 열일하셨습니다. 고대영 님도 당시 보도총괄팀장이라는 중책을 맡아 KBS 개혁에 정진하던 때였습니다.
당시 KBS를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의 국정철학을 구현하는 '청와대 방송'으로 개편하는 것은 좌파정권 10년 동안 잃어버린 대한민국의 역사를 되찾는 일생일대의 사업이었습니다. 한나라당 영구집권이라는 가슴 벅찬 프로젝트의 첫 시작이었습니다.
항상 불만이 가득해 권력에 사사건건 시비를 붙는 KBS 탐사보도팀을 해체하고, 일부 좌파 좀비 기자들을 제작에서 배제하는 일은 그래서 중요했습니다. 그리고 제가 제작진으로 있었던 미디어포커스라는 프로그램을 泣斬馬謖(읍참마속)의 심정으로 잘라냈던 것도 역시 KBS를 청와대 품으로 보내는 큰 그림의 일환이었습니다.
당시는 일부 좌파 좀비 기자들은 고대영 님의 크고 깊은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철없는 아이들처럼 푸념과 투정으로 무력하게 소일하던 때였습니다. 어리고 미성숙한 저도 附和雷同(부화뇌동)하여 이리저리 몰려다니던 부끄러운 기억이 가슴을 찌릅니다.
2008년 11월, 술자리에서 우연히 고대영 님과 마주친 저는 또 푸념을 늘어놓았습니다. 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하고 화를 내고 욕설을 했습니다. 결국 고대영 님은 자리에서 분연히 일어나 저의 멱살을 잡으셨죠. 인간이 덜된 좌파 좀비 후배 기자를 인간으로 만들기 위해 본인의 명예나 체면 따위는 개나 줘버리는 용기 있는 행동이었습니다.
이후 님은 또 한 명의 좌파 좀비 후배 기자인 박중석 기자(지금은 뉴스타파에서 일하는)의 멱살도 잡으셨고, 저의 머리끄덩이도 잡으셨습니다. 술자리는 개판이 됐고, 이 영웅담은 지금도 KBS 언저리에서 님을 칭송하는 전설로 남아 있습니다. 님이 KBS 사장님으로 영전하실 때 국회 인사청문회에서도 여러 의원들이 이 전설을 이야기하며 님을 칭송했습니다. 하지만 님은 끝내 겸양의 덕으로 제대로 답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술자리 이후 고대영 님의 활약은 더욱 눈부셨습니다. 2009년 MB가 임명한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에 대해서 KBS 일부 좌파 좀비 기자들이 트집을 잡는 특종을 물어왔더랬습니다. 스폰서 검사였다는 거죠. 해외여행을 스폰서와 같이 갔고 부부동반 비행기 표 4장이 한 사람 명의의 카드로 결제됐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여기서 님의 빼어난 기지가 발현됐습니다. 님은 절대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추상같은 한마디!
"영수증을 가져오너라!"
감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고대영 님이 KBS 보도책임자로 낙점된 이유가 저기 있었구나. 저 높은 浩然之氣(호연지기). 이분은 진정 크게 되실 분이다!
용산참사 축소보도, 노무현 대통령 서거 축소보도, 4대강 비판 축소보도, 연예인 블랙리스트 파문 등등 고대영 님이 KBS 보도책임자로 있던 시절 이룬 업적은 헤아리기가 발가락이 모자랍니다. 현대차그룹 스폰서를 받아 접대 골프를 친 추문은 그저 일부 좌파 좀비 기자들의 비판을 위한 비판이었을 뿐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아, 이 이야기는 빼놓을 수가 없네요. 2011년 KBS 기자가 야당 회의를 휴대전화로 도청해 여당에게 자료를 넘겼다는 의혹이 불거졌을 때도 고대영 님의 호연지기는 또 여지없이 드러납니다. 님은 도청 의혹을 받던 기자에게 친히 새 휴대전화를 선물하고 의혹을 일축했습니다.
正面突破(정면돌파)! 님은 진정 승부사셨습니다.
2011년 말, 저는 KBS를 온전히 청와대의 품으로 돌려놓은 고대영 님에게 어떻게 감사할 것인가, 철없던 시절의 과오를 어떻게 반성할 것인가를 고심했습니다. 당시 노조 편집국장으로 일하던 저는 님에게 선물을 하나 만들었습니다.
'올해의 고사성어'로 *施罰勞馬('열일하는 말에게 벌을 내린다는 뜻'으로 비슷한 고사성어로는 趙溫馬亂色期 등이 있다)를 선정하고, 5명의 施罰勞馬 중 한 명으로 님을 올린 겁니다.
이제 와 얘기지만 사실 다른 4명은 님에 비하면 그 업적이 많이 부족했습니다. 제 마음속의 진정한 施罰勞馬는 바로 고대영 님 한 분이셨던 겁니다.
그런데 고대영 님은 저를 검찰에 명예훼손으로 고소하셨습니다. 당시에는 서운한 감이 없지 않았지만 결국 취재만 하던 저에게 검찰 수사를 직접 경험하라는 깊은 뜻이 있었던 것은 나중에야 깨달았습니다. 아 施罰!
2017년 정권이 다시 좌파 좀비 정권으로 돌아갔습니다. KBS에서도 좌파 좀비 기자들이 다시 설치고 있습니다. 인생에서 줄곳 호연지기를 시전하셨던 고대영 KBS 사장님! 어찌 님이 좌파 좀비 정권의 햇볕을 한 뼘이라도 쬘 수 있겠습니까.
忠臣不事二君(충신불사이군)이라 했습니다. 고대영 사장님은 MB와 박근혜의 진정한 충신이지 않으셨습니까. 주나라 음식은 먹지 않겠다며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를 캐먹다 굶어죽은 伯夷叔齊(백이숙제)의 길을 따르시시라 믿습니다.
10년 동안 갸륵한 충신으로 好衣好食(호의호식)하다 이제 와서 저널리즘이니 공영방송이니 운운하며 말을 바꾸는 건 님의 호연지기에 어울리지 않습니다.
다만 뉴스타파가 고대영 사장님 등 갸륵한 충신들을 기리는 영화 '공범자들'을 제작 중이니 섭섭치는 않으실 겁니다. 영화가 더욱 잘 될 수 있도록 스토리펀딩에 입금 좀 해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영화가 개봉하면 KBS 사장에서 용퇴한 당당한 '자연인 고대영'으로 영화를 봐주시길 소망합니다. 10년 동안 당신을 따르던 KBS 일부 (잘나갔던) 후배들과 팝콘이라도 드시며 같이 보면 아름답지 않겠습니까.
물론 그들은 KBS에서 한 자리 차지하려 했던 이른바 '생계형 호위무사'들이 대부분이라 사장 끈 떨어진 '자연인 고대영'을 신경이야 쓰겠냐마는, 냉정한 炎凉世態(염량세태)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그릇이 큰 분이라 걱정 따위는 없습니다.
저도 나이가 들어가다 보니 이마가 넓어지고 머리가 가늘어지고 있습니다. 문득문득 2008년 고대영 님이 잡았던 머리끄덩이 때문이 아닌지 부아가 치밀곤 합니다. 물론 다 저희 강퍅한 성미 때문이니 괘념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얼마 남지 않았을 것으로 예상되는 사장 임기 동안 떨어지는 낙엽도 조심하시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만 드리고 편지를 마치겠습니다. *苦馬解裸 施罰!
2017년 6월
뉴스타파 김경래 올림
참고
*施罰勞馬
施(행할 시) 罰(벌 벌) 勞(일할 노) 馬(말 마)
*苦馬解裸
苦(쓸 고) 馬(말 마) 解(풀 해) 裸(벗을 라)
글ㅣ김경래 뉴스타파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