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 지 이제 2주 됐나요? 정말 많은 것들이 순식간에 바뀌고 있습니다. 바로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국민들이 '이게 나라냐?'하고 분노하면서 광화문 광장을 가득 메웠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뉴스를 보는 국민들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많아졌습니다.
제 지인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민 가고 싶었는데 갑자기 대한민국이 살만한 나라가 된 것 같다고 하더군요. 대통령 한 명 바뀌었을 뿐인데 나라 분위기가 천양지차로 달라졌습니다. 그만큼 리더는 중요합니다.
인구 5천만 명의 나라가 그럴진대, 사원 1~2천 명짜리 회사는 어떻겠습니까? JTBC를 볼까요? 그렇고 그런 종편 중의 하나였던 방송, 특히 뉴스의 존재감은 언론 중에서도 최하위권이었던 JTBC에 손석희라는 걸출한 언론인이 리더로 부임했습니다. 그리고 3년이 채 안 돼서 JTBC는 우리 국민이 가장 신뢰하는 최고의 언론사로 변신했죠.
반면 시청자들로부터 가장 사랑받던 '만나면 좋은 친구' MBC는 어떻게 됐습니까? '엠빙신'이라고 비아냥을 듣는 것은 이제 일상이 됐습니다. 방송 차량은 아예 집회 현장에서 쫓겨나고 기자들은 마이크에 붙은 로고를 떼어내고 방송해야 할 지경이 됐습니다. 요즘은 아예 욕할 가치도 없는 방송이라고 하더군요. 아무도 MBC 뉴스를 신뢰하지 않고, 무슨 기사가 나오나 신경 쓰지도 않습니다. 그냥 잊혀진 언론사로 전락해 가고 있습니다.
이게 다 리더 때문입니다. 이명박근혜 정권 9년 동안, 청와대가 보낸 낙하산 사장들이 이 꼴로 만들어 놓은 거죠. 이 사람들은 MBC만 망쳐놓은 게 아닙니다. 대한민국을 망쳐놓은 국정농단 사태에도 발을 걸쳤습니다. 정권 비선실세, 문고리들에게 로비해서 사장이 되고 그들이 시키는 대로 뉴스와 프로그램을 주물러서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가렸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은 국정농단의 <공범자들>입니다.
그 공범 중에서 가장 혐의가 많은 인물은 누구일까요? 네 맞습니다. 김재철 씨입니다.
김재철 씨는 이명박 전 대통령 조카의 친구라고 합니다. 그래서 젊은 시절부터 이명박 전 대통령을 잘 알고 지냈습니다. 덕분에 2010년 봄, 그는 엄기영 사장을 쫓아내고 꿈에 그리던 MBC 사장이 됩니다.
그가 사장이 되자마자 한 일은 무엇이었을까요? 당연히 뉴스와 시사프로그램을 손보는 것이었죠. 보도책임자들은 알아서 권력의 눈치를 보는 무능력한 인물들로 물갈이 됐습니다. 능력 있고 기개 넘치던 기자, PD, 아나운서들은 하나둘씩 방송을 할 수 없는 부서로 쫓겨났죠.
시청자들은 변화를 귀신같이 알아차리더군요. MBC 뉴스에 대한 평가는 급전직하했습니다. 여론조사에서 언제나 KBS와 수위를 다투던 MBC의 신뢰도, 공정성이 김재철 사장 2년 만에 하위권으로 추락했습니다.
이명박의 낙하산이었지만 행태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더 닮았습니다. 남들이 모르는 '오랫동안 특별히 친한 관계'였던 여성이 있었죠. 그리고 그 여성이 MBC를 쥐락펴락했다는 사실이 나중에 드러났습니다. 어떻게 쥐락펴락 했냐구요?
그 여성과 밥 먹고 술 마시고 여행 다니고 선물 사주는 데 MBC 법인카드를 흥청망청 썼다는 사실은 애교에 불과합니다. 새로 생긴 MBC 해외지사 책임자에 어느 날 갑자기 아무도 모르는 사람이 임명돼서 직원들이 의아해한 적이 있습니다. 알고 보니 그 여성의 오빠였더군요.
이뿐 아닙니다. 무용가였던 그 여성은 MBC 본 계열사의 각종 프로그램에 수십 편에 출연하고 자그마치 20억 원을 받아갔습니다. 무명이나 다름없던 국악인이 최고 등급의 한류스타나 돼야 받을 수 있는 출연료를 챙긴 겁니다.
소름 끼치지 않습니까? 단 4년 만에 대한민국을 나락으로 떨어뜨린 박근혜-최순실 씨와 너무 닮지 않았나요? 국정농단과 꼭 닮은 'MBC 농단'입니다.
결국 2012년 MBC 언론인들은 김재철 씨의 횡포와 뉴스의 몰락을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파업에 돌입했습니다. 무려 170일 동안이나 이어진 긴 싸움이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우리는 패배했습니다. 저와 최승호 PD 등 6명의 언론인이 해고되고, 파업에 참여했다는 이유만으로 백여 명이 정직과 징계를 당했습니다. 그리고 2백여 명이 마이크와 카메라를 빼앗겼습니다. 그 빈자리는 말 잘 듣는 경력사원들로 채워졌습니다.
김재철씨도 2013년 결국 3년만에 MBC에서 쫓겨났습니다. 왜냐구요? 박근혜 대통령이 굳이 이명박의 사람을 중용할 이유가 없잖아요. 토사구팽. 어차피 청와대에 충성할 낙하산 후보들은 줄을 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박근혜 정권에게 버림받은 김재철 씨는 그 뒤로도 끊임없이 정치권을 기웃거렸습니다. 새누리당에 입당해서 고향인 경남 사천시장 경선에 도전했다가 떨어지더니 결국 지역위원장이 되더군요. 지난 대선 때는 홍준표 후보를 열심히 따라다니는 게 화면에 잡히기도 했습니다. 어른들 말씀대로 사람은 절대 변하지 않더군요. 참 일관적이고 예측 가능하게 움직이는 사람입니다.
최승호 감독의 영화 <공범자들>은 이명박근혜 정권 언론 장악의 실체를 낱낱이 드러낼 겁니다. 정권이 보낸 낙하산 사장들이 공영방송에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MBC는 어떻게 엠빙신으로 전락했는지, 언론자유와 민주주의가 어떻게 무너졌는지 생생하게 보여줄 겁니다.
<자백>에서 김기춘, 원세훈 씨를 추적했던 것처럼, 최승호 감독은 언론장악의 장본인들을 모조리 찾아갑니다. 그리고 카메라를 들이대고 책임을 묻습니다.
이 영화의 주연 배우 중 하나는 당연히 김재철 씨가 되겠죠? 그는 국정농단의 공범이자 MBC 농단의 주범이니까요. 스크린에서 만나볼 김재철 씨의 당황한 얼굴이 눈에 선하게 그려집니다.
글ㅣ박성제 (MBC 해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