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공범자들> 스토리펀딩 4화의 주인공은 안광한 MBC 전 사장입니다. 안 사장은 공정한 방송을 요구한 PD, 기자 등을 70명이 넘게 징계하거나 해고했는데요. 비리 의혹, 정윤회 아들 드라마 캐스팅 압력 등 최근 드러나고 있는 의혹도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최승호 PD가 서울 모처의 사무실에서 안 사장을 찾아냈습니다. 최 PD의 질문에 안 사장은 뭐라고 답했을까요?
이명박근혜 정권의 여러 특징 중에는 후안무치와 적반하장이 있습니다. 그런 정권에 기대어 출세를 하려는 공영방송사 간부들 또한 그랬지요. 지난 1월 16일 MBC뉴스데스크의 <MBC '악의적 보도 강경 대응' 언론사·기자 고소>라는 보도는 이런 '후안무치 적반하장'의 극치였습니다.
이 보도의 배경은 이렇습니다.
정유라의 이화여대 입시비리가 널리 알려진 후, 드라마 제작현장에서 MBC PD들이 분개하는 소리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안광한 사장의 오더'라며 2014년부터 무려 7개의 드라마에 연속적으로 캐스팅 낙하산이 떨어졌는데, 알고 보니 정윤회의 아들이었던 것입니다.
단역은 그렇다 쳐도 조연급까지 낙하산이 떨어지는 것은 전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일입니다. 조연이 잘하면 드라마 대본까지 바뀌기도 하고, 또 나중에 주연급으로 성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니 제작진은 수백 명 오디션까지 보면서 캐스팅을 잘하려고 합니다. 안광한과 그 수하들은 이걸 무시한 것이죠. 드라마가 어떻게 되든, MBC가 어떻게 되든..
그 뒤로 <TV조선>에서 '정윤회가 모 방송사 사장과 만났다'가 보도되고 이어서 <미디어오늘>은 '정윤회가 만난 방송사 사장은 MBC 안광한'이라고 썼습니다. MBC는 이것이 모두 모두 악의적 허위 보도라며 <미디어오늘>과 <TV조선> 기자들과 경영진을 고소했습니다. 그리고 고소했다는 사실을 MBC 간판 뉴스데스크로 보도한 것입니다.
그런데 넉 달 후 5월 17일 <TV조선>에서 정윤회 단독 인터뷰를 보도했습니다. 그 인터뷰에서 정윤회 씨는 식사 자리에서 안광한 MBC 사장을 만났다고 시인했지요.
이게 무슨 코미디입니까?
MBC라는 공영방송사의 메인뉴스를 안광한 개인의 거짓말을 위해 써먹은 것입니다. 그러니 MBC 노동조합에서 '치욕적인 뉴스 사유화' '새빨간 거짓 해명도 모자라, 뉴스까지 동원해 회사의 공신력을 실추시킨 충격적인 사건'이라고 말하는 건 당연하지요.
이런 뻔뻔스러운 거짓말을 기사로 만들어 보도하게 한 보도 책임자는 당시 보도본부장 김장겸(현 MBC 사장), 보도국장 최기화(현 기획본부장), 취재센터장 오정환(현 보도본부장)입니다.
그 이후 모두 다 예외 없이 승진했습니다. 신기하지요? 그리고 예외 없이 모두 전국언론노조에서 발표한 언론부역자 명단에도 들어갔습니다. 당연하지요?
그렇다면 거짓말의 당사자, 이 영화 <공범자들>의 주연급 출연자, MBC를 이 꼴로 만들고 거액을 챙기면서 퇴직한, 안광한 전 MBC사장은 어떤 사람일까요?
저는 그를 '피의 판사'라고 불리던 나치의 '롤란트 프라이슬러'와 비교합니다. 법무부 장관이 되고 싶었던 프라이슬러는 히틀러에 충성하면서 무조건 사형 선고를 내린 사람입니다. 단심으로 끝나는 전시 재판장으로 그에 의해 사형선고를 받고 처형된 사람 중에는 뮌헨대학 백장미단의 조피와 한스 숄 남매도 있습니다.
안광한 씨는 김재철 밑에서는 부사장이었습니다. MBC 부사장은 인사위원회 위원장으로 모든 징계와 해고를 결정하는 재판장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징계는 사장의 재가로 확정되지요. 안광한 인사위원회에서 억울하게 징계받은 사람이 무려 77명인데, 그중 해고된 사람이 8명이나 됩니다.
이렇게 해고된 사람 중에는 유명한 '백종문 녹취록'에 나오는 최승호 PD와 박성제 기자도 있지요. 안광한 인사위원회의 위원이었던 백종문 본부장(현 부사장)이 자백한 말이 녹취되어 알려진 사건입니다.
"최승호 박성제 얘들은 해고할 증거가 없어. 그런데 이놈들 가만 놔두면 안 되겠다 싶어서 해고를 한 거예요. 해고해놓고 나중에 소송 들어오면 그때 받아주면 될 거 아니냐. 소송비용이 얼마든 변호사가 수십 명이 들어가든 내 알 바가 아니고..YTN을 보니 소송결과 나오는데 6년도 더 걸리더라고요."
MBC 백종문 본부장의 발언 녹취록 중
이것이 안광한 인사위원회의 천인공노할 해고방침이었던 것입니다. 그 후 안광한 씨가 사장이 된 후 권성민 PD도 이런 식으로 해고당했다가 대법판결 후에 복직했습니다. (대법원은 전과 달리 '심리 불속행 기각'이라는 빠른 판결제도를 적용했습니다.)
해고 외에 안광한 인사위원회에 끌려가서 정직 등 중징계 당한 사원은 저를 포함해 68명이나 됩니다. 중징계 당한 사람들도 대부분 법원에 무효판정 받거나 무효로 대법에 계류 중입니다.
저는 안광한 인사위원회에서 3개월 정직을 당했는데, 역시 법원에서 무효판정 받았습니다. 그런데 안광한 씨가 사장 된 후에 같은 사유로 정직 1개월 징계를 또 받았습니다.
그래서 다시 법원에 가서 또 무효를 받아 왔습니다. 처음 징계에서 재징계 무효까지 약 5년이나 걸렸지요. 이렇게 재징계까지 당하고 법원에서 두 번이나 무효 받은 사람이 저 말고도 7명이나 더 있습니다.
해고징계 외에 부당전보를 당하고 법원에서 무효 판결로 원직으로 돌아온 사람도 그동안 63명이나 됩니다. MBC 일반사원 중 '열에 하나'는 법원에서 징계와 부당전보를 받은 뒤 결국 무효라고 판정받은 사람입니다. 이렇게 안광한 씨는 MBC를 무법천지로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제가 그를 나치에 충성하던 '피의 판사' 프라이슬러와 비유하는 이유입니다.
안광한 인사위원장, 김재철 사장에 의해 해고-징계-전보당하고, 엉뚱한 교육까지 몇 달 받은 MBC 사원들은 전국적으로 300여 명이 넘습니다. 모두 전국언론노조 조합원입니다. 이런 식으로 공정방송을 주장하는 노동조합을 탄압하는 것은 UN에 보고될 정도로 국제적으로도 희귀한 사례였습니다.
2016년 6월 제네바의 제32차 유엔인권이사회(United Nations Human Rights Council, UNHRC) 회의에서 마이나 키아이 유엔(UN) '평화적 집회 및 결사의 자유' 특별보고관이 한국 공영방송 MBC의 노조탄압 실태에 대해 공식적인 우려를 표명하는 보고서를 제출했습니다. 안광한 사장의 말대로 MBC가 상암시대를 맞아 '글로벌 MBC'로 도약한 것이지요.
사원들의 해고와 징계, 비선실세 정윤회와 줄대기, 드라마 낙하산 캐스팅..이런 것은 MBC 구성원들이 견뎌내면 됩니다. 방송만 제대로 나간다면, 이런 것들은 얼마든지 참을 수 있습니다.
제일 괴롭고 힘든 것은 해고 징계 전보 당한 것이 아니라, MBC가 제 역할을 못하고 국정농단의 공범이 되어가는 것을 목도하는 것이었습니다.
안광한 사장이 취임한 지 두 달 후, 세월호 참사가 난 지 9일 만에 그가 사내 전 구성원에게 보낸 글이 있습니다. 세월호를 빙자한 사실상의 보도지침을 하달한 것입니다.
".. 2002년에 있었던 '효순·미선 양 방송'이 절제를 잃고 선동적으로 증폭되어 국가와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데 비해, 이번 방송은 국민정서와 교감하고 한국사회의 격을 높여야 한다는 교훈적 공감대를 형성하는데 커다란 기여를 했습니다.."
안광한 사장이 MBC 구성원들에게 보낸 사내 메일 중
전원 구조했다는 오보가 나갔어도, 현장에서 기자들이 기레기 소리를 들어도 그것이 한국사회의 격을 높인 방송이라는 것이었습니다. 이후로 MBC에서는 권력을 비판 감시하는 보도와 프로그램들이 제대로 방송된 적이 거의 없습니다. 세월호 같은 문제를 다룰 수 있는 심층 탐사 프로그램들이 그저 명맥만 유지하고 있습니다.
이제 시사보도는 박근혜의 국정농단을 비호하면서 MBC가 공범이란 말을 들을 정도로 몰락했습니다. 최순실 태블릿PC의 증거 능력을 문제 삼아 박근혜-최순실의 범죄 혐의를 축소하려해서 민언련으로 부터 '역사에 남을 친정부 기획보도'로 선정되기도 한 것은 빙산의 일각입니다.
프라이슬러 판사가 법정에서 피고인을 큰 소리로 몰아치는 모습은 지금도 유튜브에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MBC 인사위원장 시절의 안광한 씨는 사원들을 닦달하지도 못했습니다. 조합원들에게 진술만 하고 나가도록 유도했지요. 감히 조합원들의 죄를 묻는 일문일답을 하기는 어려웠을 겁니다. 저에게도 여기는 토론하는 자리가 아니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그냥 징계하고 해고하는 자리였겠지요.
프라이슬러 판사와 안광한이 확실히 다른 점은 그들의 말로(末路)일 겁니다. 아무렴요. 그때는 제2차 세계대전 중이었으니까요.
그렇다면 지금은요? 이렇게 영화라도 기록으로 만들어 두어야 우리 후손들이, 또는 후배들이 보면서 교훈으로 삼겠지요. 최승호 PD, 아니 최승호 감독의 영화 <공범자들>을 적극 지지해주시기 바랍니다.
글ㅣ 조능희 (MBC PD, 전 전국언론노조 MBC본부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