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권력의 심장부를 겨냥하다

6화. '창조간첩'의 달인들

2016-07-18

이번에 소개 드릴 등장인물들은 창조간첩의 달인들입니다. 국정원에서 수십 년 동안 전해 내려온 창조간첩 기법에 숙련된 달인들입니다. 그들이 손을 대면 말 못하는 바위로부터도 자백을 끌어낼 것 같은 인물들입니다.

그들이 가진 가장 중요한
창조 간첩의 비결이 바로
'간첩의 가족'이 되는 겁니다.

달인1. 아줌마 수사관 

"누구를 찍으시는 건가요?"

아줌마 수사관

"국정원에서 오셨죠?"

최승호 PD

간첩조작 사건 취재를 할 때 가장 어려운 것이 조작을 한 당사자를 만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국정원 수사관들은 법원으로부터 철통 같은 보호를 받습니다. 그들은 특별한 통로를 이용하기 때문에 취재진이 동선을 파악하기가 어렵습니다.

게다가 국정원 수사관이 출석하는 재판은 보통 비공개로 진행되고, 어쩌다 공개되더라도 가림막을 쳐서 수사관들의 외모를 알아볼 수 없습니다. 그러니 취재진이 도무지 수사관들을 따라붙을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유우성 사건 재판에서는 운이 좋았습니다. 재판이 밤 12시를 넘겨 끝나는 바람에 수사관들이 법원 중앙 통로로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른 통로들은 모두 잠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운 좋게도 유가려 씨로부터 허위자백을 받아낸 수사관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위 영상은 국정원 현직 수사관을 인터뷰한 좀처럼 보기 드문 영상입니다.

아줌마 수사관은 유우성 씨의 여동생 유가려 씨를 신문해 '오빠가 간첩'이라는 허위자백을 받아낸 사람입니다. 유가려 씨는 그녀의 이름을 몰랐기 때문에 '아줌마'라고 혼자 불렀습니다. 아줌마는 가려 씨의 어머니 뻘 정도의 나이였는데 매우 헷갈리는 태도로 가려 씨를 괴롭혔다고 합니다. 자백을 강요하면서 구타를 하다가도 가려 씨가 견디지 못해 울면 그녀를 끌어안고 함께 울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아줌마 수사관은 '나에게는 아들만 둘이 있는데 조사가 끝나면 너를 양녀로 삼고 싶다'고 했다고 합니다. 반면 가려 씨가 자백을 번복하고 오빠가 간첩이 아니라고 했을 때는 "내가 옷 벗으면 네가 우리 아들 챙겨줄래?"라며 '진술 번복하지 말라'고 가차 없이 굴었다고 합니다. 저희가 만난 심리 전문가는 이처럼 태도를 돌변하는 것이 심각한 고문이라고 말했습니다.

"(아줌마 수사관의) 신원을 저희들이 밝히려는 게 아니고 당사자(유가려 씨)가 합신센터에서 맞았다고.." 

"재판 결과 나오면 보시면 됩니다."

"맞았다 하니까, 조작이 있었다 이런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지금 사실관계가 틀린 게 많지 않습니까? 지금 나와있는 게."

"재판부 결정이 나시면 확인하시면 됩니다. 지금 초상권 침해로..명함 주십시오. 명함 주세요."

"드릴게요. 여기 있습니다."

아줌마 수사관은 저에게 '초상권 침해'라며 강하게 항의했습니다. 국정원 수사관 입장에서는 우리가 자신에게 카메라를 들이대는 이 상황이 믿기 어려웠을지 모릅니다. 그 날 재판에 불려 나와야 했던 현실 자체를 믿기 어려웠을지도 모르죠. 수십 년 수사관 생활에서 처음 겪는 일이었을 테니까요.

그 날 법정에서는 아줌마 수사관과 유가려 씨의 격돌 상황이 있었습니다. 아줌마 수사관이 구타한 사실을 계속 부인하자 재판장은 유가려 씨에게 '직접 물어볼 것이 있으면 물어보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유가려 씨는 들고 있던 종이를 말아 쥐고 아줌마의 머리를 때리는 시늉을 하며 물었습니다. 

"제가 화교가 아니고 탈북자라고 하자 증인이 서류를 가지고 들어오면서 '가리야'하고 부르고 이렇게 머리를 때린 적이 없나요?" 

아줌마는 가려가 자신에게 다가와 머리를 내리치는 동작을 하자 깜짝 놀라서 몸을 피했습니다. 아줌마가 앉아 있던 의자가 뒤로 밀릴 정도였습니다.

"서류 뭉치를 들고 머리를 때린 적은 없습니다."

"없기는 왜 없습니까? 어떻게 자기가 한 행동을 기억 못합니까?"

유가려 씨는 아줌마 앞으로 다가가 큰 소리로 항의했지만 아줌마 수사관은 끝까지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증인은 나를 딸처럼 생각한다고 했는데, 없는 일 만들어주고 허위 진술 만들어주고 그 누구보다도 허위 진술이라는 것을 알면서 왜 마지막까지 허위 진술을 받으려고 했나요? 그게 진정 어머니의 마음으로 나를 딸처럼 생각한 건가요?"

"허위 진술받은 사실 없습니다."

아줌마 수사관은 허위 자백을 강요한 사실을 끝까지 부인했습니다. 그러나 대법원은 유가려의 진술이 '부당하게 장기간 계속된 사실상의 구금 상태에 있었음에도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도 보장받지 못한 채 심리적 불안감과 위축 속에서 수사관의 회유에 넘어가 진술한 것'이라고 판결했습니다.

달인2. 큰삼촌과 삼촌들

아줌마 등 합동신문센터 수사관들에 의해 자백의 큰 틀이 만들어진 뒤 국정원 본부에서 수사팀이 내려왔습니다. 수사팀에서 제일 나이가 많은 책임자는 유가려 씨에게 '나를 큰삼촌이라고 불러라'고 했습니다. 나머지 남자 수사관들은 '삼촌'이 됐고 여자 수사관들은 '언니'가 됐습니다.

이상한 가족이
만들어진 겁니다

큰삼촌은 50대로 덩치가 매우 큰 '특수부대 출신'임을 자랑하는 인물이었습니다. 북한을 여러 차례 침투했었다는 그는 조사를 하다가도 갑자기 운동을 하는 등 힘을 과시하는 타입이었다고 합니다. 긴 막대기를 들고 다니다 이리저리 휘두르며 운동을 했다고 합니다.

큰삼촌은 밥을 제시간에 주고, 조사 강도를 낮추는 등 가려 씨를 합신센터 수사관들보다 부드럽게 대하면서 '가족의 입장에서 가려의 가족을 돌봐주고 싶다'며 설득했습니다. 오빠가 간첩인 것을 진술해서 빨리 털어버리면 한국에서 함께 살 수 있지만 그렇지 않으면 오빠는 감옥에 가고 가려는 추방당해야 한다고 설명했습니다.

가려 씨는 결국 그를 의지하게 됐고, 그의 말대로 하면 만사가 잘 풀릴 것이라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는 가려 씨가 말을 잘 들으면 63빌딩이나 바닷가에 데려갔습니다.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는 가려 씨에게 기타를 주기도 했고, 자기 집의 애완동물을 갖다 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큰삼촌은 평소에는 부드럽게 대해주다가도 자신의 의도대로 진술이 나오지 않으면 책상을 발로 쿵 차곤 했는데 그때마다 책상이 확 밀려날 정도로 충격이 컸다고 합니다.

큰삼촌 수사팀은 자백의 내용을 세세하게 맞추는 역할을 했습니다. 예를 들어 가려 씨가 '연길의 모모 피시방에서 오빠가 보낸 탈북자 명단을 USB에 받아 북에 넘겼다'고 진술하면 수사진이 직접 연길의 PC 방과 USB을 샀다는 문방구에 가서 사진을 찍어오는 식으로 증거를 만들었습니다. 물론 겉으로만 증거를 수집하는 척했을 뿐 내용 상으로는 엉터리에 불과했습니다.

예를 들면 유가려 씨가 USB를 샀다는 문방구에 저희 취재진이 가보니 USB를 판매한 적이 없었습니다. 또 PC방에는 명단을 이메일로 받아 USB에 저장하는 데 필요한 한글 프로그램이 깔려 있지 않았습니다. 큰삼촌 수사팀이 만든 수천 페이지의 증거기록이라는 게 모두 허위의 사실을 기초로 만들어진 것이니 그중 어떤 것이 조작됐다고 강조하는 것이 무의미할 것입니다.

간첩조작이 아니라 수사비 유용으로 해임된 큰삼촌

얼마 전 뉴스타파에 제보가 왔습니다. 큰삼촌이 국정원에서 해임됐다는 것입니다. 이유가 뭘까? 만약 국정원이 그의 간첩 조작을 문제 삼아 해임했다면 환영할 만한 일일 겁니다. 그러나 국정원은 직원의 문제에 대해 확인해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국회 정보위 쪽으로 확인을 부탁했습니다.

며칠이 지나 답변이 왔습니다. 큰삼촌이 해임된 것이 사실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사유는 수사비 유용이라고 합니다. 대공 영역은 원래 수사비 유용이 많은 분야입니다. 간첩 잡는다면 따지지 않고 세금을 펑펑 퍼주니까요. 그러니 대공수사요원의 수사비 유용을 찾아내는 것은 마음만 먹으면 어렵지 않은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간첩 조작으로 처벌해야 할 사람을 수사비 유용으로 해임하는 것은 일종의 꼬리 자르기에 불과합니다.

유우성 사건에서 간첩 증거를 조작했던 수사관들 중에 '조작'으로 처벌받은 자들은 중국 공문서를 위조하는데 개입한 4명이 전부입니다. 그중에서도 문서 위조를 직접 사주한 김보현 과장만 실형을 선고받아 복역 중이고 나머지 3명은 '선고유예'라는 솜방망이 처벌을 받았습니다. 선고유예는 '무죄보다 받기 어렵다'는 그야말로 미약한 처벌입니다.

반면 유가려 씨를 쥐어짜서 허위자백을 받아냄으로써 이 엄청난 사건을 발화시킨 아줌마와 큰삼촌 등은 조작으로 처벌받지 않았습니다. 그들을 밀어붙여서 조작을 하게 만든 국정원 간부들도 처벌받지 않았습니다.

<자백>에는 간첩조작을 자행한 달인들의 범죄행각이 적나라하게 기록돼 있습니다. <자백>은 그들을 다시 국민의 재판정에 세워 심판할 것이고 그것은 직접적인 형사처벌로 이어질 것입니다. 우리는 이들을 반드시 처벌해야 합니다. 그래야 제2, 제3의 아줌마, 큰삼촌을 막아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좌익효수

그러고 보니 큰삼촌 수사팀 중 형사처벌을 받은 '삼촌'이 하나 있긴 하군요. 간첩조작으로 처벌된 것은 아니지만. 그는 바로 '좌익효수'입니다. 그는 2011년 1월부터 2012년 11월까지 인터넷 커뮤니티 디씨인사이드에 무려 3460여 개에 달하는 댓글을 남겼습니다.

호남을 비하하는 표현을 많이 사용했을 뿐 아니라 문재인 의원을 '문죄인' 박원순 서울시장을 'X숭이' 김대중 전 대통령을 'X대중'이라고 조롱했습니다. 인터넷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 망치부인과 그 딸을 반복적으로 모욕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는데 또 다른 솜방망이 판결이라는 비판이 높습니다. 만약 그에게 간첩조작을 자행한 죄까지 묻는다면 집행유예를 주기는 어렵겠죠?

자신과 다른 정치적 견해를 가진 사람들을 얼마나 증오했으면 '목을 베어 높은 곳에 매단다'는 뜻을 가진 '효수'라는 단어를 필명으로 썼을까요? 그는 직장인 국정원에서 이른바 '좌익'들을 종북과 간첩으로 '효수'하는 것에 만족하지 못해 사적인 공간에서까지 끔찍한 댓글들을 '살煞'처럼 날렸습니다. 일상의 세계에서 좌익효수는 미친놈이지만 국정원의 음지에서는 상식적 인간입니다.

영화 '곡성'이 펼쳐 놓은 지옥도의 리얼버전이 국정원이 음지에서 무고한 사람들을 잡는 바로 '이곳'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봅니다. 그들은 우리 사회의 가장 약자들만 잡아 채 가지만 결국 그 공포로 우리 모두를 지배합니다.

그 냄새와 소리가, 그들이 거기 있다는 공기의 떨림이 우리의 의식, 우리의 미래를 마비시킵니다. 이대로는 안됩니다.

국가권력의 심장부를 겨냥하다

1화. 공포물인듯 코미디같은 영화 '자백'

2화. "언론이 질문 못하면 나라가 망해요"

3화. MBC가 버린 <자백> 영화로 탄생하다

4화. '자백의 무덤'을 만든 사람, 원세훈

5화. "간첩 조작하려니 힘드시죠?"

6화. '창조간첩'의 달인들

7화. 간첩 공장에서 구출된 사내

8화. 삼성과 국정원, 그리고 '자백'

9화. "눈물이 쏟아진 영화"

10화. "나 최승호랑 같이 해고된 사람이야"

11화. 최광희 영화 평론가가 말하는 <자백>

12화. "자백을 4천만이 봤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