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권력의 심장부를 겨냥하다

5화. "간첩 조작하려니 힘드시죠?"

2016-07-11
"그리고 부탁 하나 있습니다"
유가려
"네. 말씀해보세요."
판사
"오빠 단독으로 5분 가량 만날 수 없습니까?"
유가려

위 영상은 유우성 사건의 전개과정 중에서 가장 비극적인 순간을 담고 있습니다. 국가폭력을 행사하는 검사와 그에 맞서 피해자를 보호하려는 변호사들의 모습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때는 2013년 3월. 장소는 수원지법 안산지원 법정입니다. 여동생 유가려 씨를 고문해 '오빠가 간첩'이라는 허위자백을 받은 국정원은 오빠 유우성을 구속했습니다. 그 뒤 국정원과 검찰은 '증거보전재판'을 신청했습니다. 판사 앞에서 유가려가 '오빠가 간첩'이라고 증언하도록 만들어 확고한 증거로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유가려가 증언한 뒤 그녀를 중국으로 추방해버리면 나중에 증언을 번복하더라도 재판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계산을 했을 것입니다.

국정원은 증거보전재판에서도 오빠와 여동생이 만나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오빠는 법정에 있게 하고 여동생은 영상증언실에서 증언하게 했습니다. 여동생 앞에는 법정이 보이는 모니터 2대가 있었는데 오빠가 앉아 있을 피고인석을 비추는 모니터는 합판 같은 것으로 가려버렸습니다. 유가려 씨 옆에는 국정원 수사관들이 지키고 앉아 있었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여동생은 하루 종일
'오빠가 간첩'이라고 울며
증언했습니다

재판은 끝났고 이제 여동생은 국정원 중앙합동신문센터로, 오빠는 구치소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때 여동생이 오빠를 만나게 해달라고 한 것입니다.

"5분 가량 단독으로 만날 수 없냐고 물어보는데요."
김용민 변호사
"오빠를? 만나게 해줍시다."
장경욱 변호사
"이미 다 끝났는데 판사님 계신 앞에서 인도적으로."
김용민 변호사
"야 진짜 너무한다 너무해 진짜."
장경욱 변호사

그러나 검사는 만나게 해줄 생각이 없습니다.

"저는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됩니다."
이시원 검사

유가려 씨는 증거보전재판에 나오기 전에 검사에게 오빠를 만나게 해달라고 요청했고, 검사는 노력하겠다고 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막상 유가려 씨가 국정원, 검찰의 요구대로 증언한 뒤 오빠를 만나게 해달라고 마지막 부탁을 했을 때도 거절했습니다. 오빠를 만나는 순간 그동안 만들어 놓은 허위자백이 다 무너질까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제발 좀 보게 해주세요."

유우성

"적절하지 않은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천낙붕 변호사

"제발 좀 보게 좀 해주세요."

유우성

"적절하지 않은 이유는.."

이시원 검사

"아니 여기서 다 보는 앞에서 그냥 저 안에서만 보겠습니다."

유우성

유우성 씨는 국정원에 구속되자마자 여동생을 만나게 해달라고 빌고 또 빌었습니다. 동생이 '오빠가 간첩'이라고 자백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고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물어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국정원은 절대로 그 요청을 들어줄 생각이 없었습니다.

국정원은 처음부터 간첩조작을 실행한 곳이니 그렇다 치지만 검사까지 같은 태도를 유지했습니다. 유가려 씨가 검찰에서 '국정원에서 한 이야기는 모두 거짓이다'고 말했더니 당시 이시원 검사는 '그렇게 말하면 못 도와준다'고 했다고 합니다.

"그러면 우리 입장 바꿔서 우리 만약에 민사소송하실 때 상대편에 이런 경우 생겨서 보자 하면.."

이시원 검사

"아니 가족인데 면회 한 번 시켜줍시다. 면회."

장경욱 변호사

"가족인데.."

양승봉 변호사

"저는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이시원 검사

이렇게 당당하게 국가폭력을 행사하는 검사 앞에서 변호사들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요? 장경욱 변호사는 요즘 말로 '사이다'같은 한 방을 먹입니다.

사건 조작하시려고 하니까
힘드시죠?

검사의 표정이 어땠을지 짐작이 가시죠? 영상을 보시면 장경욱 변호사나 다른 변호사들이 얼마나 거침없이 국가폭력에 맞서는지 느끼실 겁니다. 저는 간첩조작사건을 취재하면서 여러 차례 장 변호사가 국정원 수사관들과 통화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그때마다 당당하게 오히려 수사관들을 '지도'하며 변호를 하는 모습에 감탄을 했습니다.

그러나 간첩조작 피해자들을 구하는 변호 활동을 하는 변호사들은 자신도 국가기구의 증오와 폭력에 노출시킬 각오를 해야 합니다.

장경욱 변호사는 국정원이나 검찰 입장에서는 눈에 가시 같은 존재입니다. 기회만 있으면 종북 변호사라고 음해를 합니다. 유우성 사건이 발생한 뒤 장변호사는 그를 만나기 위해 국정원을 찾아갔습니다. 그때 국정원 수사관들은 유우성 씨에게 온갖 험담을 늘어놓으며 만나지 말라고 했다고 합니다. '5년 형 받을 사람을 7년 받게 만드는 변호사'라고 하면서 장변호사 말을 듣고 국정원을 상대로 소송을 하면 후회할 거라고 했다는 겁니다.

국정원 직원들은 뒷구멍에서 하는 험담에 그치지 않고 직접 유우성 사건 변호인들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기도 했습니다. 간첩조작을 안 했는데 했다고 명예를 훼손했다는 거지요. 물론 국정원 직원들은 소송에서 졌습니다.

유우성 사건이 조작으로 밝혀진 뒤 법무부는 오히려 장경욱 변호사와 민들레 회장인 김인숙 변호사를 징계하려고 했습니다. 두 변호사가 피고인들에게 진술 거부를 조언했다는 게 이유였습니다. 징계 신청을 받은 변호사협회는 이를 기각했습니다. 그러자 법무부는 독자적으로 징계를 개시했고 이에 대해 법원이 다시 무효라고 판결했습니다.

간첩조작 피해자들, 특히 탈북자를 구하는 활동을 하는 것은 경제적인 면에서도 참 어려운 일입니다. 대법원 판결이 나기까지 검찰, 국정원과 법정에서 싸우자면 생업인 다른 사건 변론에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간첩조작 피해자가 무죄 판결로 풀려나면 기뻐할 새도 없이 그를 보호하는 활동을 해야 합니다. 머물 곳을 마련하는 등 일상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변호사들이 마련해줘야 합니다. 그것도 대법원 판결이 날 때까지 몇 년 동안의 긴 기간을 말입니다. 대단한 사명감이 아니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 일을 민들레의 변호사들이 해왔습니다.

민들레-국가폭력 피해자와 함께 하는 사람들(회장 김인숙)은 유우성 사건을 변호하던 변호사들이 좀 더 조직적으로 국가폭력을 종식시키는 활동을 하기 위해 만든 단체입니다. 그러나 아직 회원이 50명 정도라서 회비 수입만으로는 구제활동을 할 수 없고 회원 변호사들이 사비를 지출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민들레 바로가기

간첩조작 등 국가폭력을 뿌리 뽑기 위해서는 법률 전문가들의 구제 활동과 언론의 협업이 필수적입니다. 뉴스타파와 민들레의 협력은 그런 면에서 아주 드문 성공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민들레가 해온 구제 활동을 뉴스타파는 지속적으로 보도해왔고 그 결과 벌써 2명의 간첩조작 피해자들이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우리의 추정으로는 아직 많은 피해자들이 있고 더욱 활발한 구제 활동을 벌여야 합니다.

만약 영화 <자백>을 통해 얻게 되는 수익이 있다면 뉴스타파는 그것을 국가폭력 취재, 그리고 민들레의 국가폭력 피해자 구제 활동에 쓰려고 합니다.

<자백>의 성공은 국가폭력을 주도해온 세력에 두 가지 면에서 큰 타격이 될 것입니다. 우선 <자백>의 영향으로 국정원 등 폭력적인 국가기구는 개혁 대상이 될 것입니다. 만약 그래도 또 간첩조작 등 국가폭력 사례가 발생한다면? 즉시 민들레와 뉴스타파가 출동하겠죠.

국가권력의 심장부를 겨냥하다

1화. 공포물인듯 코미디같은 영화 '자백'

2화. "언론이 질문 못하면 나라가 망해요"

3화. MBC가 버린 <자백> 영화로 탄생하다

4화. '자백의 무덤'을 만든 사람, 원세훈

5화. "간첩 조작하려니 힘드시죠?"

6화. '창조간첩'의 달인들

7화. 간첩 공장에서 구출된 사내

8화. 삼성과 국정원, 그리고 '자백'

9화. "눈물이 쏟아진 영화"

10화. "나 최승호랑 같이 해고된 사람이야"

11화. 최광희 영화 평론가가 말하는 <자백>

12화. "자백을 4천만이 봤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