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권력의 심장부를 겨냥하다

9화. "눈물이 쏟아진 영화"

2016-08-02

안녕하세요, 은수미입니다. 다큐 영화 '자백'이 상영관에 걸린다면 기적이라더군요. 그것이 왜 기적이냐고,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 맞느냐고, 따질 생각은 없습니다. '기적이라고? 그럼 기적을 만들면 되지!' 이런 담담함으로 글을 씁니다.

처음 '자백' 시사회에 가벼운 마음으로 갔습니다. 더 이상 고문에 대한 기억으로 가위 눌리거나 어두운 밤 홀로 일어나 눈물 흘리지 않는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건 '과거'이며 오래된 상처 자국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눈물이 쏟아졌습니다. 시사회가 끝나자마자 재빠르게 도망 나와 밤거리에서 선글라스를 껴야할 정도로 눈물이 그치질 않았습니다. 

'자백'이 모든 기억을
되살렸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자백'이 바로 현재 진행형이라는 사실에 상처자국 속 찢어진 생살이 아우성하며 깨어난 것입니다.

어떻게 구속과 수감과 고문을 견디었냐고요? 왜 지금도 인권과 존엄과 자유와 평등에 목매냐고요? 저를 포함해 제가 사랑하는 사람이 한없이 무너지는 비참한 상황, 살기 위해서 가랑이 사이를 기어 다니는 짐승 같은 광경 앞에서 '다시는 사람들이 그와 같은 고통을 당하지 않게 하겠다' '우리의 아이들에게 다른 미래를 갖게 해야 한다'고 결심했던 탓입니다.

은수미 의원

그런데 '자백'이 "충분했느냐, 책임과 사랑을 다했느냐?"는 날 선 질문을 던졌습니다.

무방비 상태로 그 질문 앞에 다시 섰습니다. 우리에게는 게임의 규칙이 있습니다. 1등이든 꼴등이든, 정부를 지지하든 아니든, 저성과자이든 고성과자이든 사람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존엄할 권리가 있다는 헌법이 바로 게임의 규칙입니다. 부자이든 빈자이든, 강자이든 약자이든 시민인 당신은 나에게 똑같으며 당신을 사랑한다는 헌법 정신, 그것을 수호하는 것이 국가기관입니다.

그래서 헌법 37조는 국가적 중대한 위기로 개인의 권리를 제한해야 할 때조차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백'의 현실은 정반대입니다. 아니 '자백' 자체가 현실이지요.헌법을 수호해야 할 국가기관, 국정원이 끊임없이 일상적으로 국민을 고문합니다. 대한민국 국민 모두는 국정원 앞에서 존엄한 자가 아니라 잠재적 간첩혐의자입니다. 국정원 앞에서 모든 시민은 잠재적 테러분자이자 종북빨갱이입니다.

운이 나빠서
국정원의 타깃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웃이 당한 일은 내게도 올 수 있습니다. 우리 중 단 한 명에게라도 발생하는 일은 우리 모두에게 일어날 수 있습니다. 성주와 세월호가 손을 잡게 된 것도 세월호의 비참함이 사드배치라는 얼굴을 가지고 성주를 덮쳤기 때문이지요.

'수십 년 전 네가 겪은 일을 지금도 누군가 겪고 있고 겪을 수 있다'는 사실 앞에서 눈물이 앞섰습니다. 이미 알고 있는 일이고, 그래서 낙선이라는 저 자신의 아픔 같은 것은 느낄 겨를이 없이, 세상을 바꾸기 위한 도전을 하고 있는데,

'자백' 시사회를 봤던 날 만큼은 아팠습니다. 사람은 약한 존재이기 때문이지요. 아프면 비명부터 지르니까요. 그 약하디 약한 사람이 자신과 자신의 이웃과 사랑하는 모든 것을 위해 일어나곤 합니다.

그래서 기적이 일어나죠. 어쩌면 대한민국의 역사, 시민의 역사는 기적의 연속입니다. 우리가 그 기적을 만들어왔습니다. 그렇게 대한민국을 만들고 지키고 바꿨습니다.

'자백'이 상영된다는 것은, 정보기관에 의해 자행된 존엄과 인권 유린을 박물관에 보내버리겠다, 역사적 기록으로만 남기겠다는 우리의 결단입니다.

'자백'을 본다는 것은, 우리의 아이들에게 다시는 인간 이하의 고통을 겪게 하지 않겠다는 열망이자 우리의 미래입니다.

'자백'에 공감한다는 것은, 대한민국을 앞으로 나아가게 한 작은 기적을 계속 만들어가자는 우리의 약속입니다.

우리 모두 가을에
작은 기적을 만듭시다

글을 맺기 전에 한 가지 양해를 구합니다. 최승호PD가 최근 사진 만이 아니라 젊은 시절 사진이 있으면 글에 넣어 달라 했는데 제겐 그런 사진이 거의 없습니다. 소중한 친구가 저로 인해 구속, 수감, 고문당할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사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우리의 젊은 친구들이 알바와 스펙 쌓기와 자소서 쓰기 때문에 청춘을 저당 잡히지 않도록, 밟고 밟히는 경쟁만으로 청춘을 기억하지 않도록 '자백'이 상영관에 걸리기를 바랍니다. 그때 저의 젊은 시절의 사진이 기적처럼 나타날 것 같기도 하니까요.

국가권력의 심장부를 겨냥하다

1화. 공포물인듯 코미디같은 영화 '자백'

2화. "언론이 질문 못하면 나라가 망해요"

3화. MBC가 버린 <자백> 영화로 탄생하다

4화. '자백의 무덤'을 만든 사람, 원세훈

5화. "간첩 조작하려니 힘드시죠?"

6화. '창조간첩'의 달인들

7화. 간첩 공장에서 구출된 사내

8화. 삼성과 국정원, 그리고 '자백'

9화. "눈물이 쏟아진 영화"

10화. "나 최승호랑 같이 해고된 사람이야"

11화. 최광희 영화 평론가가 말하는 <자백>

12화. "자백을 4천만이 봤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