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권력의 심장부를 겨냥하다

7화. 간첩 공장에서 구출된 사내

2016-07-22

지난 이야기에서 간첩을 창조하는 달인들을 소개해드렸습니다. 많은 달인들이 합동신문센터라는 공장에서 간첩을 제조해왔습니다. 그들에 의해 제조 대상으로 찍히면 멀쩡히 나오기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간첩으로 제조까지는 됐지만 결국 구출된 한 사람이 있습니다. 홍강철 씨입니다.

우선 이 동영상을 우선 한 번 보십시오. 제가 3년 간 취재하면서 촬영한 '가장 웃기면서도 처절한' 장면이니까요.

보셨나요?

이 영상의 주인공은 홍강철 씨입니다. 그는 국정원과 서울지검 공안부가 ‘북한 보위사령부가 직파한 간첩’이라고 발표한 사람입니다. 홍강철 씨는 합동신문센터에서 몇 달 동안 신문을 받던 어느 날 밤, 수사관들이 주는 보쌈과 순대, 그리고 소주를 마십니다.

그리고 수사관들이 "종북세력 들에 대한 임무 받은 거 있지 않냐"고 유도하자 '북한으로부터 통일애국인사의 동향을 보고하라는 지령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들이 누구냐는 질문에 홍 씨는 '임수경 전 의원, 임종석 전 의원, 문규현 신부, 그리고 문익환 목사'라고 말했습니다.

"이 새끼 문익환 목사가 사망한 지 언젠데 지금도 문익환 소리 하나?"

늦봄 문익환 목사는 94년 1월 돌아가셨습니다. 돌아가신 지 벌써 20년이 넘었습니다. 홍강철 씨가 문익환 목사를 언급한 순간 수사관들은 그의 진술이 거짓인 줄 알았던 겁니다. 그런데 이야기는 이상하게 흘러갑니다.

국정원 수사관은
'문익환만 빼라'고 했습니다

다음 날 수사관은 홍 씨에게 진술서를 쓰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홍 씨는 술자리에서 수사관이 한 말을 잊고 문익환 목사까지 넣어서 썼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수사관이 다시 '빼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나온 것이 바로 아래 진술서입니다.

이 혐의는 검찰의 공소장에도 그대로 들어갔습니다. 검찰은 '통일애국인사에게 접근해 동향을 파악하라는 지령을 받은 혐의'를 기소했습니다.  

이 혐의는 사실 무시무시한 것입니다. 만약 7-80년 대 독재시대였다면 국정원은 이 진술을 핑계로 언급된 분들에 대한 수사에 들어갔을 겁니다. 당시에는 이름이 나오면 바로 잡아다 고문으로 간첩을 만들었습니다. '북에서 접촉하라고 간첩을 보냈다면 너도 간첩 아니냐'는 식이죠.

국정원은 이런 곳입니다.

홍강철 씨가 '어떻게 그렇게 쉽게 거짓 진술을 했느냐'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을지 모릅니다. 그분들께 홍강철 씨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조금 더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홍강철 씨는 독방에서 CCTV로 24시간 감시를 받는 상태였습니다. 처음에는 그나마 방에서 조사실로 가려면 복도를 거쳐 가야 했다고 합니다. 복도라도 볼 수 있었다는 거죠. 그러나 나중에는 아예 침실과 조사실이 같이 붙어 있는 곳에서 조사를 받았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문 열고 거실로 나와 조사실로 직행해야 하는 생활을 120일 동안 했습니다. 게다가 하루 종일 손을 탁자 위에 올리고 정자세를 유지해야 했다고 합니다.

홍강철 씨가 조사 장면을 직접 시연한 동영상을 보시죠.

독방에서 혼자 있게 된다면
사람은 어떤 상태에 빠질까요?

허위자백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 사울 카신 존 제이 칼리지 교수는 '혈압이 높아지고, 면역기능도 저하된다'고 합니다. 불편함이나 스트레스를 견뎌내는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 단순히 그 사람의 친구가 들어오면 이 모든 상황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는 '사람과 만나는 것이 차단되면 배고픔이나 목마름과 같은 박탈 상태를 유발한다'고 설명했습니다.

홍강철 씨는 이런 상황에서 6개월을 지내야 했습니다. 그는 '잠깐이라도 바깥공기를 마시고 싶어서, 담배 한 대 피우고 싶어서, 소주 한 잔 하고 싶어서' 그리고 더 근본적으로는 '이대로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지도 몰라서' 허위자백을 했습니다.

그러나 밤이면 후회했고 다음 날 다시 번복하는 과정을 되풀이했습니다. 수도 없이 되풀이했습니다. 홍강철 씨가 '더 이상 번복하지 말아야겠다'고 결심한 것은 국정원 간부가 '북한의 가족을 데려다주겠다'고 회유한 뒤였습니다.

"한 사람 탈북시켜 데리고 오는데 1200만 원이 드는데 가족들 데려 오려면 네가 몇 년 돈 벌어야 되겠냐? 우리가 평양에 있는 사람도 데려다줬는데 국경에 있는 너네 가족을 못 데려 오겠나?"

홍강철 씨는 운이 좋았습니다. 민들레 변호사들에 의해 구출됐으니까요.. 2심 판결까지 무죄가 나왔고 지금은 대법원 판결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한국에 온 지 벌써 3년이 됐지만 그는 아직 생업도 구하지 못한 채 판결을 기다리는 처지입니다. 컴퓨터, 용접, 트럭 운전 등 자격증들을 땄지만 막상 취직을 하기는 어려운 실정입니다.

더욱 절박한 문제는 북한의 가족들 소식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혹시라도 국정원이 얼씨구나하고 간첩으로 몰까봐 북에 있는 아이들과 동생들이 어떻게 사는지 알아볼 수도 없습니다. 그는 그저 이 모든 일이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리며 눈물을 흘리며 삽니다. 그 많은 눈물을 쏟고도 또 눈물을 흘렸던, 그가 세례를 받던 날의 영상입니다.

홍강철 씨의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들은 '다큐멘터리- 열네 번째 자백'을 보십시오.

국가권력의 심장부를 겨냥하다

1화. 공포물인듯 코미디같은 영화 '자백'

2화. "언론이 질문 못하면 나라가 망해요"

3화. MBC가 버린 <자백> 영화로 탄생하다

4화. '자백의 무덤'을 만든 사람, 원세훈

5화. "간첩 조작하려니 힘드시죠?"

6화. '창조간첩'의 달인들

7화. 간첩 공장에서 구출된 사내

8화. 삼성과 국정원, 그리고 '자백'

9화. "눈물이 쏟아진 영화"

10화. "나 최승호랑 같이 해고된 사람이야"

11화. 최광희 영화 평론가가 말하는 <자백>

12화. "자백을 4천만이 봤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