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권력의 심장부를 겨냥하다

4화. '자백의 무덤'을 만든 사람, 원세훈

2016-07-04

지난주까지 <자백>이 어떻게 만들어지게 됐는지 말씀드렸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내용을 말씀드릴 차례인데요. 영화에 등장하는 배우들의 면면을 보면 어떤 영화인지 가장 빨리 아시게 될 것 같아서 배우들을 한 분 한 분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오늘은 <자백>을 탄생시키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했다고 할 수 있는 한 조연배우를 먼저 소개합니다.

편집자주

법원에서 그를 기다렸습니다. 그는 국정원의 대선 댓글 개입 사건으로 재판을 받고 있었습니다. 재판을 할 때마다 빨간 베레모를 쓰고 군복을 입은 극우단체 회원들이 그를 에워싼 채 법원으로 들어가곤 했습니다. 만약 오늘도 그런다면 좀 험한 꼴이 연출되겠구나 싶었습니다.

"원세훈이에요!"

후배 카메라 기자가 소리쳤습니다. 법원 입구 쪽을 보고 있던 저는 황급히 몸을 돌려 뛰어갔습니다. 다행히도 원세훈 씨와 동행한 것은 두어 명의 양복 입은 신사들이었습니다. '아마 변호사겠지'하며 달라붙었습니다.

"원장님 재임 시절 유우성 씨 간첩조작사건이 발생했는데 혹시 유우성 씨에 대해서 사과하실 생각은 없으신가요?"

"몰라요."

모르다니? 한 번 더 물었습니다.

"유우성 씨에 대한 간첩조작이 대법원에서 확정이 됐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번엔 대답이 없었습니다. 갑자기 누군가 확 저를 밀쳤고, 원세훈 씨는 법원 건물 안으로 들어가버렸습니다. 그 뒤를 양복 입은 몸집이 두터운 사내가 따라 들어가면서 저를 확 밀쳤습니다.

"욱"

경호원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모른다고?

'모른다'는 말이 탁 목에 걸렸습니다. 한마디라도 의미 있는 대답을 했다면 그것을 그의 답변으로 간주하고 그냥 법원을 떠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답변을 했고 저는 떠날 수 없게 됐습니다. 사건의 최고 책임자가 '모른다'는데 그냥 갈 수는 없지 않습니까? 법원 안으로 들어가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 법정 밖에서 기다렸습니다.

원세훈 씨는 사실 유우성뿐 아니라 많은 간첩조작 피해자를 낳은 희대의 인물입니다. 그러니 다른 말은 몰라도 '모른다'는 말은 하면 안 되는 사람이었습니다. 제가 3년 동안 취재한 사건 중 당대에 일어난 사건들은 딱 하나만 빼고 모두 원세훈 국정원장 재임 시절에 일어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재임 시절 국정원 중앙합동신문센터를 '자백의 무덤'으로 만들었습니다.

중앙합동신문센터(이하 합신센터)는 탈북자로 들어온 사람들을 조사해서 간첩을 가려내는 곳입니다. '한국의 관타나모'라고 불리는 이곳은 무시무시한 곳입니다. 간첩으로 의심받으면 독방에서 6개월 동안 갇혀 가혹한 신문을 받을 수 있습니다. 달력이 없어 날짜 흐름도 잃어버린 상태에서 24시간 CCTV로 감시됩니다. 유가려 씨의 증언에 의하면 변기에 앉았을 때 가슴 위로는 CCTV에 잡힌다고 합니다. 그래서 샤워도 변기 옆에 쭈그리고 앉아서 했다는 것입니다.

간첩이라는 의심을 받은 탈북자들은 이런 곳에서 하루 종일 '너 간첩이지?'라는 질문을 받습니다. 폭언은 기본이고 구타를 당했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유가려 씨와 또 다른 여성 탈북자는 조사관들에게 일상적으로 구타를 당했다고 말했습니다. 게다가 조사관들은 자백을 하면 내보내 줄 것처럼 거짓말까지 합니다. 대가를 주겠다는 약속까지 합니다.

북한 보위사령부가 파견한 간첩이라고 허위자백을 했다가 무죄 판결을 받은 홍강철 씨에게 국정원은 '북한에 있는 가족들을 한국으로 데려다주겠다'고 약속했다고 합니다. 직업과 돈, 집까지 주겠다고 했다는 것입니다. 한국의 법률체계를 전혀 모르는 탈북자 입장에서는 간첩이라고 허위 자백하는 것이 오히려 유리하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합동신문센터는 2008년 12월에 설립됐습니다. 그리고 2009년 2월 원세훈 씨가 국정원장으로 취임했습니다. 이듬해부터 그 전에는 보기 힘들었던 탈북자 간첩들이 양산됩니다. 2010년 3명으로 시작해서 2011에는 1명으로 떨어졌다가 2012에는 무려 5명, 2013년에는 2명의 간첩이 나옵니다. 여기에 유가려 씨와 홍강철 씨까지 합하면 2013년에도 4명이 만들어진 것이죠.

말하자면 원세훈 국정원장은
'탈북자'라는 간첩 조작의
금맥을 개척한 사람입니다

금맥을 개척한 뒤에는 광부들이 더 열심히 금을 캐내도록 동기부여를 했습니다. 포상금을 대폭 올린 것입니다. 이명박 정부는 간첩 신고 포상금을 최대 1억 원에서 5억 원으로 다섯 배나 올렸습니다. 말이 신고 포상금이지 검거자에게도 주기 때문에 국정원과 경찰의 대공 수사관들은 대목을 만난 거죠. 포상금뿐 아니라 진급도 되고 훈장도 받고, 연금도 올라갑니다. 간첩을 한 명 잡으면 수사관들은 인생이 확 피게 된 겁니다.

그래서 원세훈 국정원장 시절 합신센터에서 모두 11명의 간첩이 태어납니다. 뉴스타파는 지난 3년 동안 그들이 간첩이 맞는지 취재해왔습니다. 저희가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자료를 검토할 수 있었던 모든 사례들은 조작되었다고 확신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유우성 씨의 경우는 전 국민이 보는 앞에서 그의 간첩죄가 무죄라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원세훈 전 원장이 '모른다'고 말하면 안 되는 사람입니다.

마침내 법정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다들 나간 뒤 그가 나왔습니다. 따라붙었습니다.

"원장님 한 말씀만 좀 부탁드릴게요. 아니 유우성 씨를 모른다 하면 어떻게 하세요."

위 영상에서 들어보시면 알지만 저는 거의 애원조로 말했습니다. 

"아니 내가 그만둔 지 얼마나 됐는데."

이 대목에서 꼭지가 돌았던 것 같습니다. 그만뒀으면 다야? 그래서 책임도 없어진다는 거야? 얼마나 많은 사람이 간첩조작을 당했고 삶을 망쳤는데, 게다가 죽은 사람도 있는데, 책임이 없다니.

"아니 원장님 계실 때 유우성 씨가 간첩 조작 피해를 봤잖아요 그럼 사과를 하셔야죠."

"허 참."

원세훈 씨가 저를 향해 콧소리 섞인 비웃음을 발사했습니다. 어처구니가 없었나 봅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원세훈 씨가 탔고, 제가 따라 타려 하자 경호원이 막았습니다. 키는 그리 크지 않은데 부딪쳐보니 근육으로 뭉친 어깨와 팔이 얼마나 탄탄한지 단박에 제가 밀렸습니다.

그때 갑자기 그가 뒤로 살짝 밀려나고 공간이 열렸습니다. 누군가 그의 옷깃을 잡고 뒤로 빼서 저로부터 떼어 놓았습니다. 바로 뉴스타파 최기훈 기자였습니다. 최 기자는 그날 원세훈 씨의 국정원 댓글개입 재판 취재를 왔다가 이 상황을 마주친 겁니다. 재빨리 안으로 들어가서 원세훈 씨 옆에 섰습니다. 경호원의 얼굴이 보이자 화가 나 인상을 좀 썼습니다.

"어허 이 사람이."

그런데 한 여성이 갑자기 엘리베이터를 나가더니 문을 연 채로 원세훈 원장에게 나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곤 접은 우산으로 저를 가리키며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갑자기 질문을 당해 순간적으로 '기자'라고 답했습니다. 그 짧은 순간에도 PD라고 해야 하나, 언론인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기자라고 해야 하나 고민했습니다.

그 여성이 가장 쉽게 알아들을 용어를 선택한 것이 '기자'라는 답입니다. PD라고 답하면 과거 제가 <검사와 스폰서>를 취재할 때 박기준 부산지검장이 한 말처럼 'PD가 왜 난리야?'라는 소리를 들을 분위기였습니다. 그런데 그 여성은 기자도 그런 질문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 모양이었습니다.

여: "누구십니까?"

최: "저 기자입니다."

여: "기자인데 왜 지금, 유우성이가 무슨 관계가 있어?"

최: "간첩조작으로 피해를 받았잖아요?"

여: "그게 우리하고 무슨 관계가 있어요?"

최: "원세훈 원장 시절에 간첩 조작된 거 아니에요?"

여: "그게 무슨 관계가 있어!"

갑자기 나타난 이 여성이 누군지 한동안 헷갈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나오라니까 원세훈 씨가 순순히 밖으로 나가고, 그 여인이 저를 향해 우산대를 겨누며 '우리와 무슨 관계가 있냐'고 했을 때 직감했습니다. 그녀가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부인이라는 것을.

'우리'라는 단어가 참
거슬렸습니다

남편이 공직에 있을 때의 일을 묻는데 '우리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받아치는 것은 자신이 남편과 공동으로 국정원을 운영하기라도 했다는 것일까요? 아내의 일종의 월권을 묵묵히 인내하는 원세훈 씨의 모습도 한심하고 안타까웠습니다. 공직이라는 것이 참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는 느낌, 이런 사람을 국정원장으로 5년씩이나 앉혀뒀던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해 화가 날 지경이었습니다.

원세훈 씨는 부인을 따라 엘리베이터를 나가 계단을 내려갔고 혼자 남은 경호원이 저를 계속 막았습니다. 이 정도면 더 이상의 인터뷰는 포기하는 게 보통이지만 이 날은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신과 아무 관계없다는 원세훈 씨를, 전직 국가정보원장을 그냥 보내면 안 되겠다 싶었습니다. 경호원과 몸싸움을 하면서 숨이 턱에 차도록 원세훈 씨를 따라잡으려 뛰었습니다.

나머지 영상들은 <자백>에서 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그 날 원세훈 씨가 대한민국 공직자로서 보여줄 수 있는 막장을 보여줬다고 생각합니다. 무책임의 막장 말입니다. <자백>에는 원세훈 씨 말고도 무책임한 공직자들이 여럿 나옵니다. 검사, 국정원 직원들, 그리고 전직 대통령 비서실장까지. 그중에서도 원세훈 씨는 특별한 존재였습니다.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국가권력의 심장부를 겨냥하다

1화. 공포물인듯 코미디같은 영화 '자백'

2화. "언론이 질문 못하면 나라가 망해요"

3화. MBC가 버린 <자백> 영화로 탄생하다

4화. '자백의 무덤'을 만든 사람, 원세훈

5화. "간첩 조작하려니 힘드시죠?"

6화. '창조간첩'의 달인들

7화. 간첩 공장에서 구출된 사내

8화. 삼성과 국정원, 그리고 '자백'

9화. "눈물이 쏟아진 영화"

10화. "나 최승호랑 같이 해고된 사람이야"

11화. 최광희 영화 평론가가 말하는 <자백>

12화. "자백을 4천만이 봤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