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회복 프로젝트 <공범자들>

9화. "이명박 대통령, 4년만에 뵙습니다"

2017-06-19

최승호 PD가 긴 추적 끝에 이명박 전 대통령을 만났습니다. 퇴임 직후 4대강 사업의 비밀을 묻기 위해 찾아간 이후 오랜만에 재회한 두 사람. 최승호 PD가 던지는 날카로운 질문에 순간 당황한 이 전 대통령은 뭐라고 말했을까요? 영화 <공범자들> 클립 영상에 현장의 상황을 담았습니다. 

<공범자들> 스토리펀딩이 막바지에 이르렀습니다. 공영방송을 파괴한 공범자들을 만나는 여로도 마지막에 이르렀습니다. 이 마지막 여로에서 과연 누구를 만나야 할까요? 여러분은 누가 공영방송 파괴의 끝판왕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렇습니다. 바로 이명박 전 대통령입니다.  

저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과 구속으로 전락하게 된 가장 큰 원인 제공자가 바로 MB라고 생각합니다. 그가 종편 채널들을 만들어 대통령이 항상 아부의 언사를 내뱉는 방송에 둘러싸이도록 했고 공영방송을 파괴해서 대통령의 일탈을 견제하지 못하도록 했으니까요.

만약 공영방송이 박근혜 전 대통령을 적절히 비판했더라면 그가 탄핵을 당할 만큼 큰 일탈을 저지르지는 않았을 거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따라서 박근혜 씨는 감옥에서 행여 촛불시민을 원망할 것이 아니라 MB를 원망해야 합니다.  

MB를 형님이라
부르는 홍준표

이명박 전 대통령이 오늘날 언론지형을 만드는 데 크게 기여한 공신들이 2명 있습니다. 한 명은 지난 대선 과정에서 언론에 관한 망발을 많이 한 홍준표 전 경남지사입니다.

그는 SBS가 세월호 인양의 배경에 문재인 후보 측과의 밀약이라도 있었던 것처럼 표현한 기사에 대해 사과하고 기사를 삭제했을 때 "내가 집권하면 SBS를 없애버리겠다"고 폭언을 했습니다. 또 "내가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할 때 MBC가 좌편향돼 종편을 만들었는데 요즘 종편이 하루 종일 편파방송을 한다. 내가 대통령이 되면 2개는 없애겠다"고 했습니다.

대선 기간 이명박 전 대통령을 찾은 홍준표 후보

홍준표 전 지사는 이명박 전 대통령을 형님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그가 자유한국당 대통령 후보가 됐을 때 가장 먼저 찾아가 만난 사람이 MB였습니다. 홍준표 씨는 마치 자신이 종편을 만든 주역인 것처럼 행세하지만 사실 그는 MB의 하명을 충실히 받들어 종편을 만드는 법을 날치기 통과시킨 하수인 정도로 봐야 할 겁니다.

다만 MB가 종편을 하루아침에 4개나 만들었듯이 2개쯤은 없앨 수 있다는 저 확신! 그것이 MB와 홍준표 두 언론파괴자들이 공유한 정신세계입니다.

사실 홍준표 씨보다 종편을 만든 장본인이라는 로열티를 더 주장하는 한 분이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 시절 방통대군이라고 불리던, 그러나 정권 말기 어느 날 뇌물을 먹은 혐의로 구속되며 사라진 인물.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입니다.

내가 만나보니까
잘 있던데?

이명박 정부 초대 방송통신위원장에 오른 최시중(가운데) 씨

이명박 전 대통령을 만나기 전에 먼저 최시중 씨부터 만나는 게 예의일 것 같아 그를 찾아 나섰습니다.

그가 어디 사무실을 열고 있다는 소식도 들었고 집이 어디라는 정보도 얻었습니다. 파주 어느 골프장을 자주 다닌다는 말도 있어 조감독이 가서 살펴보기도 했습니다. 골프장에서 라운딩을 하고 있는 최시중 방통대군을 만나, 그의 전성기에 정연주 KBS 사장을 쫓아내고 MBC에 김재철을 내려보내던 사연을 물어보는 상상을 했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골프장 직원들은 최시중이 누군지도 모르더군요. 권력무상이라고 해야 할까요?

우리는 결국 그를 찾았습니다. 그의 고향 구룡포 향우회가 열린다는 정보가 포착됐습니다. 최시중 씨의 구룡포 사랑은 방통대군 시절부터 잘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그가 반드시 오리라 생각하고 찾아갔습니다.

구룡포 향우회 장소에서 만난 최시중 씨

역시! 그가 기사 딸린 검은색 세단에서 내렸습니다. 제가 가서 말을 걸었습니다.

"위원장님, 오랜만입니다. 건강하시네요!"

그는 흠칫하더니 "건강하지 그럼"이라고 말했습니다. 제 말투가 좀 건강하지 않기를 바라는 투라고 오해하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위원장 시절에 하셨던 일에 대해 여쭤보려고 왔습니다. 그때 해직된 많은 기자들이 아직도 복직도 못했고요.."

그런데 그가 이상한 말을 했습니다.  

"내가 만나보니까 잘 있던데?"

"네?" 

아니,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일까요? 언론 해직자들을 만나다니?

짧은 시간 멍하다가 깨달았습니다. 최시중 씨는 지금 자신이 방통위원장 시절 방송에서 쫓겨난 언론인들에 대해 말하는 게 아니라 74년 동아일보에서 해직된 선배 언론인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최시중 씨도 동아일보 기자였으니 아마 선배 해직 언론인 중 어떤 분과는 친분이 있겠지요.

참 황당했습니다. 자신이 방송을 이명박 정권의 소유물로 만드는 과정에서 해직된 언론인들에 대해 이렇게 까맣게 잊고 있을 수 있다니요.

최승호 PD의 질문을 받는 최시중 씨

저는 그 질문을 포기하고 다음 질문을 던져봤습니다.

“위원장님이 방송을 정권 편으로 만드시는 과정에서 정연주 KBS 사장을 쫓아내시지 않았습니까?”

“어? 내가 힘을 쏟은 것은 종편 만드는 일이었지..정연주 사장 쫓아내지 않았는데?"

이 분 정말 고수였습니다. 정연주 KBS 사장을 배임 등 혐의를 씌워 쫓아낸 뒤 대법원에서 해임 무효 판결이 났을 때 최 씨는 국회에 출석한 적이 있습니다. 최 씨는 판결 결과에 대한 의원들의 질의에 ‘도의적으로는 책임을 느낀다'고 답변까지 해놓고는 지금 와서 그런 적 없다는 겁니다.

그는 진정 유체이탈의
최고봉이었습니다

저는 최시중 씨에게 자신의 잘못을 고백받는 것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게 유체이탈을 과시하면서 향우회 참석자들과 악수하며 카메라 앵글에서 사라졌습니다.  

구룡포 향우회장에서 지인들과 인사하는 최시중 씨
그렇다면 MB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무실이 어디 있는지는 전 언론이 압니다. 그러나 그를 만나 질문을 던지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언제나 전직 대통령으로서 경호를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질문을 던지고 또 대답을 들을 정도의 시간 동안 제지를 당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은 경호원들이 직무유기를 하기를 기대하는 것과 같습니다.

뉴스타파 역시 과거 그를 만나러 갔다가 고생 끝에 사무실 문틈으로 도시락 먹고 있는 그를 잠깐 카메라에 담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습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무실이 있는 서울 대치동의 한 빌딩

어쨌든 우리는 그를 찾아 서울 대치동으로 갔습니다. 그의 동선을 파악하기 위해 일종의 헌팅을 하러 간 것입니다. 가보니 우리가 접근해 질문을 던질만한 동선이 너무 짧았습니다. MB가 타고 내려올 엘리베이터에서 자동차가 서 있게 될 차도까지의 거리가 불과 몇 미터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 정도 거리라면 우리가 접근하기도 전에 그는 자동차에 타버릴 것입니다.

게다가 그가 언제 나타날지도 알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주변에 물어보니 늘 나오는 것도 아니고 시간도 들쭉날쭉 이었습니다. 그를 만나려면 적어도 일주일은 뻗치기를 할 각오를 해야겠다 생각한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잠시 뒤, 우리 일행 중 한 명이 "저기, 저기.."하며 말을 더듬었습니다. 그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이게 웬일입니까? 이명박 전 대통령이 막 빌딩 앞에 도착한 것이었습니다.

그가 차에서 내려 빌딩으로 들어가는 뒷모습이 또렷하게 보였습니다. 그가 내린 차량 뒤에는 경호원들이 타는 것으로 보이는 검은색 SUV가 서 있었고 몸매가 탄탄한 경호원들이 요소요소를 살피고 있었습니다. 반가운 마음마저 들었습니다. 가까이 있었다면 "4년 만이네요!"라고 인사할 뻔 했습니다.

언론이 질문을 못하게 하면
나라가 망합니다!

4년 전 이명박 전 대통령이 청와대를 떠나 논현동 집으로 돌아올 때 제가 가서 만난 적이 있었습니다. 그 때 그에게 "4대강 수심 6미터, 대통령께서 지시하셨습니까?"하고 물었지요. 사저로 돌아오는 날 반기는 주민들과 스스럼 없이 인사하는 분위기가 아니었다면 그에게 다가가 악수하고 질문할 수는 없었을 겁니다.

당시 경호원들은 제가 질문을 하자마자 대열에서 저를 밀어냈습니다. 밀려난 저는 MB의 뒤꼭지에 대고 "언론이 질문을 못하게 하면 나라가 망합니다!"라고 외쳤습니다.

그 질문대로 4년 뒤 나라는 망가졌고 현직 대통령이 탄핵되고 구속되는 불행을 겪었습니다. 나라를 망가트린 책임은 물론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있겠지만 이명박 전 대통령도 그 책임의 반 정도는 나눠 져야 할 것이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다져놓은 국정농단의 시스템을 박근혜 전 대통령은 그대로 물려받아 쓴 것이니까요. 특히 공영방송 KBS와 MBC를 파괴함으로써 권력에 대한 견제 시스템을 마비시킨 것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 가장 큰 책임을 져야 할 문제일 것입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을 기다리는 최승호 PD
한 마디의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기 위해..

이번에도 운이 따라줬습니다. 우리는 사전 답사만 하려던 계획을 변경해 인터뷰를 시도하기로 했습니다. MB가 있는 빌딩 건너편 건물 2층에 비어 있는 사무실이 있었다는 것도 우리의 운이었습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건너편 입구를 바라보며 MB가 나오기를 기다렸습니다.

3시간이나 지났을까? 차 두 대가 빌딩 입구에 섰습니다. 경호원들이 주변을 경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가 있는 건너편 사무실은 보지 않았습니다. 저와 조감독이 내려갔습니다. 정재원 조감독은 핸드폰으로 현장 영상을 담기로 했습니다. 건너편 우리가 있던 사무실에는 두 사람의 카메라 기자가 MB가 나올 입구를 겨냥하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그가 나왔습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입구 쪽으로 나오는 그를 향해 접근했습니다.

그의 주의를 끌어야 했습니다. 경호원이 적대적으로 저를 대하지 않도록 해야 했습니다. 한 마디의 질문이 가능한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서입니다.

안녕하십니까? 대통령님
오랜만에 뵙습니다

그가 다가왔습니다. 저를 알아보는 기색입니다. 저에게 악수까지 청했습니다. 마침내 그의 손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물었습니다. 

최승호 PD의 질문을 받는 이명박 전 대통령

여기서 제가 무슨 질문을 하고 그가 어떤 답변을 했는지 밝히지 않는다 해도 나무라시지는 않겠지요? 더 많은 이야기들은 오는 8월 개봉할 영화 <공범자들>을 통해서 생생한 현장의 영상으로 보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한 가지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역시 MB는 MB였다는 것입니다.  

이명박 전 대통령과 4년만에 만난 최승호 PD
언론 회복 프로젝트 <공범자들>
1화. '역사적 오보'내고 승승장구
2화. 국정농단의 공범, MBC농단의 주범
3화. KBS 기자들이 수요일 밤에 모인 이유
4화. '피의 판사'와 안광한 MBC 사장
5화. KBS 사장님과 머리끄덩이의 추억
6화. MBC 암흑시대 9년 그리고 김장겸
7화. 세월호 원혼 '길완용'을 내쫓다
8화. '조인트 폭로' 김우룡, 뒤늦은 반성
9화. "이명박 대통령, 4년만에 뵙습니다"
10화. '공범자들'을 향한 국민의 공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