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 회복 프로젝트 <공범자들>

6화. MBC 암흑시대 9년 그리고 김장겸

2017-06-12
MBC를 점령하라

2008년 이명박 대통령은 집권 첫해부터 커다란 위기를 맞이합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서두르다가 불투명하고 불완전한 검역 기준때문에 국민적 저항에 부딪힌 겁니다. 몇 차례 사과로 국면을 넘긴 이명박 정부는 곧바로 촛불집회 참석 시민들에 대해 대대적 색출, 수사에 나섰습니다. 그리고 눈엣가시 같던 MBC 점령 작업에 착수합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서두르다가 국민적 반발에 부딪히자 사과 기자회견을 하는 이명박 전 대통령

MBC는 2007년 대선 때 이명박 후보를 둘러싼 최대 의혹이던 BBK 주가조작 문제를 파헤친데 이어, 집권 후에도 한반도 대운하,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대해 비판적 보도를 이어가고 있었습니다. 이명박 정권의 MBC 점령 시나리오는 치밀하고 집요했습니다.

2008. 3. 방송통신위원장에 최측근 최시중 임명
2008. 7. 방통심의위 장악, MBC <PD수첩> 보도에 '사과 명령' 중징계
2008.~2009. <PD수첩> PD들 검찰 수사, MBC 압수수색, PD들 체포
2009. 4. <뉴스데스크> 신경민 앵커 강제 하차
2010. 2. 엄기영 MBC 사장 임기 중 사퇴. 이듬해 한나라당 공천 출마
2010. 3. 김재철 MBC 사장 임명. 청와대 '조인트' 발언 폭로

영화 <공범자들>과 인터뷰하는 신경민 국회의원(전 MBC 앵커)

무려 2년에 걸친 치밀한 점령 공작이었습니다. 노동조합을 비롯한 MBC 구성원들은 격렬하게 저항했습니다. 검찰의 압수수색에 맞서 회사 정문에서 스크럼을 짰고, 청와대의 앵커 경질 압력에 항의해 기자들은 뉴스 제작을 거부했습니다.

강요된 <PD수첩> 사과방송을 막기 위해 뉴스센터를 봉쇄했고, 김재철 사장 낙하산 임명에 반대해 39일 총파업을 벌였습니다. 해고 2명을 비롯해 많은 구성원들이 징계를 받았고, 저 역시 기자회 제작거부를 주도했다는 이유로 징계를 받았습니다. 

그렇게 MBC를 장악한 정권은 일부 간부들을 앞세워 편파 왜곡 보도를 일삼았습니다. 윤도현, 김미화 등 출연자들이 잇따라 퇴출됐고, 시사 프로그램들은 줄줄이 폐지됐습니다. 2012년 1월 기자들은 뉴스 쇄신을 요구하며 다시 제작거부에 돌입했습니다. 노동조합이 곧이어 총파업에 들어갔습니다. 한국 언론사 사상 최장기인 170일 파업이었습니다.

역사상 가장 격렬한 저항에 대해, 사측은 가장 악랄한 보복 진압을 자행했습니다. 6명 해고, 108명 중징계, 파업에 참여한 기자, PD, 아나운서 등 200명을 현업에서 축출하고 유배시켰습니다. 노동조합을 상대로 195억 원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하고, 통장을 가압류했습니다. 

기자들을 쫓아낸 빈 자리는 100명 가까운 경력 기자를 뽑아 대체 인력으로 채워 넣었습니다. 채용 면접에서는 지역과 사상을 검증했습니다. 구성원들의 노조 탈퇴를 집요하게 강요했고, 그 사이 MBC에서는 제3노조가 만들어졌습니다. MBC는 가장 악명높은 노조 파괴 사업장이 되었습니다. 신뢰도와 영향력은 끝없이 추락했습니다.

실세는 '김장겸'

김장겸 씨는 2017년 2월, 박근혜 대통령 탄핵 직전에 3년 임기의 MBC 사장으로 취임했습니다. MBC 구성원들과 시민단체들은 박근혜 잔당 세력의 '알박기'로 규정하고 그의 사장 선임을 반대했습니다. 

그는 1987년 MBC에 기자로 입사했습니다. 저보다 꼭 10년 입사 선배로 함께 기자로 일했지만, 잘 알려진 인물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와 동년배인 선배 기자들에게 그에 대해 물었습니다. 돌아온 답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뉴스에 뜻이 있는 사람이 아니다. 초년 기자 때부터 사내 정치, 사내 정보에 밝았다."
"계속 정치부를 지망했다. 정치부가 아닌 곳으로 발령 나면 일을 열심히 하지 않았다."
"사내외 정치 욕심이 강했다. 여성을 비하하는 속어를 자주 사용했다."
"자신만의 왜곡된 시선을 뉴스에 그대로 반영한다. 기자 개인이었을 때는 큰 문제가 없었겠지만, 힘을 갖고 나니 뉴스가 저 꼴이 난 것이다."

김장겸 MBC 사장(맨 왼쪽)

물론 주관적 평가들입니다. 실제 사례들을 찾아 봤습니다. 그는 2008년 이명박 정부의 출범과 함께 처음으로 국제팀장의 보직을 맡았습니다. 그해 11월 미국에서 오바마가 역사상 첫 흑인 대통령에 당선됐습니다. 8년만의 정권 교체로 한미 관계에 미칠 여파도 상당할 것으로 예상됐습니다.

그런데 당시 주무 팀장이던 김장겸 씨는 아침 편집회의에서 단 5개의 리포트만 발제했습니다. 보도국장을 비롯한 다른 부장들이 뉴스 가치가 크니 더 많은 리포트를 해야 한다고 지적하자 그의 대답은 이랬다고 합니다.

"이거 많이 할 필요 있습니까? 노무현과 똑같은 놈 아닙니까? 인터넷으로 젊은 사람들 선동하는.."

노무현과 똑같은 놈
아닙니까?

편집회의는 순간 침묵이 흘렀다고 합니다. 이날 MBC를 비롯해 방송 3사의 메인 뉴스는 오바마 당선과 그 의미, 여파로 각각 20개 이상의 리포트를 내보냈습니다. 이 사례는 김장겸 씨가 자신만의 편협한 생각을 기사 판단까지 확장한 일화입니다. 당시만 해도 편집회의에 참석한 구성원들만 웃고 지나간 해프닝이었다고 합니다. 아무도 그가 보도국장, 보도본부장, 사장까지 오를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명박 정부의 MBC 점령이 본격화되던 2011년 2월 정치부장 자리에 오릅니다. 정치부장은 직무 특성 상 유력 정치인들을 자주 만나기 때문에 영향력이 큰 자리라 아무나 맡아서는 안 됩니다. 그는 이 때부터 노골적으로 정치부장 자리를 자신의 편협한 가치관과 사적 이익에 이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주도한 편파, 왜곡 보도는 너무 많아서 일일이 설명하기도 어렵습니다. 이명박 대통령 내곡동 사저 매입 누락 축소, 조선일보도 1면 톱으로 쓴 장관 인사청문회 기사 줄줄이 누락, 2011년 10월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 왜곡 편파 보도 등.

더욱 기가 찬 것은 당시 보도국장의 반응이었습니다. 기사 누락과 편파 보도에 대해 기자들이 항의할 때마다 보도국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장겸이가 리포트 못하겠다는데 낸들 어떡하냐?"

MBC 뉴스를 총괄 책임지고 부장들을 지휘해야 할 보도국장이 부장 핑계를 댄 겁니다.

MBC 뉴스의 신뢰가 계속 추락하자 그해 말부터 보도국 기자들이 들끓기 시작했습니다. 김장겸 정치부장 교체 요구도 높아졌습니다. 그러자 보도국장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아니야. 바뀌면 내가 바뀌어야지."

이미 김장겸 씨는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보도국 실세가 된 겁니다. 

결국 MBC 기자협회는 2012년 1월 총회를 소집해 뉴스 쇄신과 보도국장, 보도본부장 퇴진을 요구하며 제작거부에 돌입했습니다. 곧이어 노동조합도 공정방송을 요구하며 총파업에 들어갔습니다. 한국 언론 역사상 최장기인 170일 파업이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이 파업을 불러일으킨 직접 장본인이 바로 김장겸 씨였습니다.

유례없는 수직 상승,
사장에 오르다

이후 김장겸 씨의 행보는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170일 파업을 짓밟은 뒤 치러진 2012년 말 대통령 선거에서 김장겸 부장의 MBC 정치부는 편파 왜곡 보도로 박근혜 후보 당선을 밀었습니다. 안철수 후보가 논문을 조작했다고 날조 보도한 사건은 선거 보도의 기념비적 오보였지만,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습니다.

박근혜 당선 직후인 2013년 5월 그는 보도국장에 오릅니다. 이미 수많은 기자들을 보도국 밖 유배지로 쫓아내고 자기만의 사단을 구축한 뒤였습니다. 그는 2013년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을 철저히 누락했습니다. 자신이 직접 지시한 기획 기사에서 '문재인 의원이 변호사를 겸직하고 있다'는 대형 오보로 망신을 자초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기간 MBC를 찾아 언론노조 MBC본부 김연국 위원장과 인사하고 있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MBC 보도는 한국 언론 사상 최악의 참사이기도 했습니다. 뉴스는 유가족을 모욕하고 조롱했습니다. 

"완전 깡패네. 유족 맞아요?"

김장겸 씨는 당시 편집회의에서 이런 말을 한 사실이 언론 보도로 알려졌습니다.

2015년 2월 보도본부장에 오른 그는 지난해 터져 나온 '최순실 게이트' 사건에서도 축소, 은폐, 물타기 보도로 일관했습니다. 그 공로로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직전인 지난 2월 그는 드디어 MBC 사장에 올랐습니다. 그를 사장으로 선임한 방송문화진흥회의 이사장은 문재인 대통령을 공산주의자라고 주장해 검찰 수사를 받고 있는 공안검사 출신 고영주 씨입니다.

그의 사장 취임식이 열리던 2월 28일, MBC는 일선 PD들이 준비하고 있던 촛불과 탄핵 다큐, 6.10 항쟁 30주년 기념 다큐를 잇따라 불방시켰습니다. 담당 PD는 유배 보내거나 징계했습니다. 

최승호 PD의 질문을 받는 고영주 방문진 이사장(왼쪽). 문재인 대통령을 '공산주의자'라고 주장해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사상 초유의 대통령 파면으로 치러진 5월 조기 대선에서 그는 다시 최악의 편파, 왜곡 보도를 자행했습니다. 문재인 후보가 MBC <100분 토론>에서 "MBC가 심하게 무너졌다"는 발언을 하자, 노골적인 보복 보도를 퍼붓기도 했습니다. 뉴스는 오로지 문재인 후보의 낙선을 목적으로 한 듯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미 MBC의 영향력과 신뢰도는 선거에 거의 영향을 미칠 수 없을 정도로 추락한 뒤였습니다.

김장겸을 끌어
내리겠습니다

지난달 29일 MBC 노동조합은 <김장겸 고영주 퇴진 행동>에 돌입할 것을 선언했습니다. 기자와 PD들이 이름을 걸고 김장겸의 퇴진을 요구하는 성명서도 잇따라 나오고 있습니다. 재능 넘치는 드라마 PD지만 현업에서 쫓겨난 뒤 베스트셀러 작가로 변신한 김민식 PD의 기발한 저항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노동조합은 공정방송 보장의 최소 장치였던 단체협약을 파기하고, 불법 해고, 부당 징계, 부당 전보, 노조탈퇴 종용, 가입 방해 등 온갖 위법행위를 저지른 전현직 경영진들의 형사책임을 묻기 위해 노동청에 특별근로감독을 신청했습니다.

지난 9년은 MBC 암흑시대였습니다. 보도, 시사, 라디오는 물론이고 드라마와 예능도 차례차례 무너졌습니다. 지난해 광화문과 전국을 밝혔던 촛불의 요구는 헌정질서의 회복과 적폐 청산이었습니다. 그러나 유독 언론의 자유, 특히 KBS와 MBC 두 공영방송은 여전히 암흑시대입니다. 

영화 <공범자들>의 한 장면. 최승호 PD가 UHD 개국기념식에서 김장겸 사장에게 질문을 던지자 MBC 직원들이 가로막고 있다.

가장 악랄했던 방송 장악, 노조 탄압에 맞서 MBC 구성원들은 용감하게 저항했습니다. 포기하지 않았고 끝까지 버텼습니다. 이제 저희가 MBC 암흑시대 9년을 끝내겠습니다. 헌법 21조 언론자유를 회복하겠습니다. 방송 독립과 공정성을 되찾겠습니다.

암 투병 중인 해직 기자 이용마도, 해직 PD 최승호도, 얼굴이 지워진 아나운서들도 모두 제자리로 돌려놓겠습니다. 언론 자유를 염원하는 국민과 시청자가 저희 뒤에 있음을 믿고, 반드시 김장겸을 끌어내리겠습니다.

글ㅣ김연국 (MBC 기자, 언론노조 MBC본부 위원장)

언론 회복 프로젝트 <공범자들>
1화. '역사적 오보'내고 승승장구
2화. 국정농단의 공범, MBC농단의 주범
3화. KBS 기자들이 수요일 밤에 모인 이유
4화. '피의 판사'와 안광한 MBC 사장
5화. KBS 사장님과 머리끄덩이의 추억
6화. MBC 암흑시대 9년 그리고 김장겸
7화. 세월호 원혼 '길완용'을 내쫓다
8화. '조인트 폭로' 김우룡, 뒤늦은 반성
9화. "이명박 대통령, 4년만에 뵙습니다"
10화. '공범자들'을 향한 국민의 공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