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성신학원을 세운 운정 리숙종 선생이 별세하신지 34년이 되는 날입니다. 선생은 1936년 성신여학교를 설립한 이래 반백년 동안 성신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셨습니다. 운정 선생과 수많은 성신가족의 땀과 눈물이 있었기에 성신이 지금처럼 한국의 대표적인 여성교육기관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습니다.
이제 성신학원은 정이사 체제로 전환하는 시점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그 전환은 단순히 4년 남짓 임시이사들이 성신학원을 운영해온 시기를 마감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것은 성신이 실로 오랜 기간의 혼돈과 고통을 끝내고 새로운 변화와 발전을 안정적으로 도모하는 시대를 맞이한다는 역사적인 의의를 갖습니다.
이러한 시점을 맞아 저는 오늘 크게 두 가지 문제에 대해 성신학원을 대표하여 사죄의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대전 산내사건 희생자 유족회”에서는 정식으로 면담 요청을 하고 지난 14일 성신학원을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산내 골령골 민간인 학살 사건”의 현장 지휘 책임자인 성신학원 심용현 전 이사장의 만행에 관련하여 세 가지를 요구했습니다. 첫째, 성신학원은 유족들에게 사죄할 것. 둘째, 심용현 전 이사장이 민간인을 대량 학살한 반헌법 행위자임을 알리고 기록으로 남길 것. 셋째, 운정캠퍼스에 설치된 심용현 전 이사장의 흉상을 철거할 것.
최근 언론 보도를 통해 이 학살 사건에 대해 알고 계시겠지만 사건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6・25가 발발한 직후 여러 지역에서 법적 절차 없이 헌병과 특무대원, 경찰들을 동원하여 형무소 재소자와 보도연맹원 등을 학살한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정확한 피해 규모는 누구도 알 수 없지만 연구자들은 적어도 몇만 명, 많게는 20만 명 이상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 학살 사건들 중에서도 “산내 골령골 민간인 학살 사건”은 규모가 가장 클 뿐만 아니라 가장 잔혹한 사건으로 꼽혀 왔습니다.
제가 지금 이 학살 사건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성신학원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걸린 중차대한 문제이며 또한 설립자와도 밀접하게 연관되는 사안이기 때문입니다.
“항일독립운동, 반민주적 또는 반인권적 행위에 의한 인권유린과 폭력・학살・의문사 사건 등을 조사하여 왜곡되거나 은폐된 진실을 밝혀냄으로써 민족의 정통성을 확립하고 과거와의 화해를 통해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국민통합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하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에 의거해 설치된 국가기관인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이 사건에 대해 2006년 11월 7일 조사를 개시하여 2010년 6월 22일 다음과 같이 결정했습니다.
【결정요지】
대전형무소에서는 1950년 6월 28일경부터 7월 17일 새벽 사이 최소 1,800여 명 이상의 재소자와 보도연맹원이 살해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은 충남지구CIC, 제2사단헌병대, 대전지역 경찰 등에 의해 법적 절차없이 대전 산내 골령골에서 집단살해되었다.
비록 전시라는 비상한 상황이었다고는 하나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야 하는 국가가 좌익 전력이 있거나 의심된다는 이유만으로 형무소에 수감된 재소자와 보도연맹원들을 법적인 절차없이 집단살해한 것은 명백한 불법행위이다.
그리고 진실・화해위원회는 현장에서 학살을 지휘한 제2사단 헌병대 심OO 중위의 행위에 대해 상세히 기록했지만 이름을 밝히지 않아 진실의 일부는 가려져 있었는데, 그 뒤 유족들과 언론의 끈질긴 추적으로 최근 심용현 전 이사장의 군복무 시절 자필 이력서를 찾아냄으로써 “산내 골령골 민간인 학살 사건”의 현장 지휘자인 심OO 중위와 심용현 전 이사장이 동일 인물임이 명백히 규명되었습니다.
세상에는 심용현이라는 이름이 드러나지 않았지만, 심용현 전 이 사장의 딸이자 2010년 당시 성신여자대학교 총장으로 재직하던 심OO씨는 당연히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진실・화해위 원회에서 이 사건을 총괄했던 상임위원이 당시나 지금이나 성신여대 교수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국가기관에서 학살의 진상이 규명된 이상, 비록 이름이 드러나지 않았더라도 심OO씨는 가해자의 유족으로서, 또 성신여대 총장으로서 심용현 전 이사장의 불법적 악행에 대해 피해자들과 유족들, 그리고 성신구성원들에게 깊이 사죄하고 응분의 조치를 취했어야 할 것 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어떠했습니까?
진실・화해위원회의 결정이 있었던 바로 다음 해인 2011년 4 월 12일 성신여대 운정캠퍼스에 심용현 전 이사장의 흉상을 건립했으며, 같은 해 12월 1일에는 수정캠퍼스 생활과학관의 명칭을 심용현 전 이사장의 아호를 딴 “현정”애국관으로 바꾸고 현판 제막식을 가졌습니다. 성신여대 홍보매체인 〈성신뉴스〉는 현판 제막식 당일 “우리나라가 어려웠던 시기에 군의 고급 장교로서 국가에 헌신하고 초창기 우리대학의 발전에 크게 이바지한 성신학원 제6–7대 이사장이신 故 현정 심용현 이사장의 뜻을 기리고 후보생들에게 나라를 사랑하는 정신을 계승할 수 있도록 하고자 현정애국관으로 명명되었다”고 보도했습니다. 심OO씨가 생각하는 애국과 국가에 헌신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드러내는 내용입니다. 또 국가기관인 진실・화해 위원회와 위원회의 결정을 송두리째 부인하는 망언입니다. 심용현 전 이사장의 흉상은 “교내 탄원서” 건으로 심OO씨의 입지가 어려워졌던 2013년 1월 30일 슬그머니 철거되어 탕비실에 옮겨져 있습니다.
1989년에 발간된 《성신50년사》에 따르면 심용현 전 이사장은 군대에서 전역하기 7개월 전인 1954년 5월 8일부터 세상을 떠난 1986년 7월 20일까지 32년 2개월 동안 성신학원의 이사를 지냈으며, 그 사이 네 차례에 걸쳐 10년 남짓 이사장까지 맡았습니다. 국가폭력 대량학살의 현장 책임자가 얼마만큼 참회하고 사죄해야 신성한 교육활동에 참여할 수 있을지 모르 겠지만, 심용현 전 이사장에게서는 반성과 사과의 흔적도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유족인 심OO씨가 애국과 헌신이라고 강변하는 것을 보면 심용현 전 이사장의 생전의 생각과 행동도 익히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산내 골령골 민간인 학살 사건”의 현장 책임자인 심용현 전 이사장은 결코 성신학원에 발을 들여놓아서는 안 될 사람입니다. 심용현 전 이사장의 성신학원 관여에 관련 있는 사람들은 설령 그의 악행을 몰랐다 하더라도 도의적 책임이 있습니다. 만약 악행을 알고서도 심용현 전 이사장을 성신학원의 이사로, 상임이사로, 이사장으로 임용하는데 관계했다면 책임의 성격과 정도는 근본적으로 달라질 것입니다.
심용현 전 이사장의 집단학살 만행에 대해서 지난 69년 동안 아무런 반성도 참회도 사죄도 없었습니다. 진실・화해위원회의 진실 규명이 있고나서도 사죄는 커녕 성신학원의 이름으로 피해자와 유족 등에게 2차, 3차 가해가 지속되었습니다. 집단 학살 자체는 성신학원과 무관할 것입니다. 하지만 피해자와 유족 등에게 계속 가해진 2차, 3차 가해는 성신학원의 책임입 니다. 그리고 심용현 전 이사장이 성신학원의 이사, 상임이사, 이사장으로 무려 32년 이상 재직한 것 역시 성신학원의 책임입니다. 저는 오늘 이 자리에서 심용현 전 이사장과 관련해서 발생한 성신학원의 모든 과오에 대해 학살 피해자들과 유족들에게 깊이 머리 숙여 사죄합니다. 또한 이러한 수치스러운 일들이 발생하고 시정되지 않은데 대해 성신구성원들과 국민들께 진심어린 사죄의 말씀을 올립니다. 그리고 이 자리의 사죄로 그치지 않고 일련의 과오들에 대한 진상규명과 역사기록, 교육 등 응분의 조치가 취해져야 할 것입니다.
일제로부터 해방된 우리 민족이 무엇보다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는 일제강점기 동안 자행된 반민족행위의 규명과 반민족 행위자의 처벌이었습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사정으로 민족의 염원을 이루지 못하고 60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만시지탄이지만 2004년 3월 22일 “일본제국주의의 국권침탈이 시작된 러・일전쟁 개전시부터 1945년 8월 15일까지 일본제국주의를 위하여 행한 친일반민족행위의 진상을 규명하여 역사의 진실과 민족의 정통성을 확인하고 사회정의 구현에 이바 지함을 목적으로” 하는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었습니다. 그리고 법에 따라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구성되어 2005년부터 2009년까지 4년 6개월 동안의 활동을 통해 1,006명을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했습니다. 이 1,006명 가운데 교육계 인사는 22명이며, 우리 성신학원과 관련된 사람은 2명입니다.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는 성신학원의 설립자이며 1985년 6월 18일 별세할 때까지 성신학원을 주도적으로 운영해온 리숙종 전 이사장의 일제강점기 행위는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 제2조 제11호 “학병・지원병・징병 또는 징용을 전국적 차원에서 주도적으로 선전 또는 선동하거나 강요한 행위”, 제2조 제13호 “사회・문화 기관이나 단체를 통하여 일본제국주의의 내선융화 또는 황민화운 동을 적극 주도함으로써 일본제국주의의 식민통치 및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한 행위”, 제2조 제17호 “일본제국주의의 통치 기구의 주요 외곽단체의장 또는 간부로서 일본제국주의의 식민통치 및 침략전쟁에 적극 협력한 행위”에 해당하여 친일반민족행위로 결정했습니다.
또한 위원회는 성신여대 초대 총장을 지낸 조기홍 전 성신학원 이사장의 행위도 〈특별법〉 제2조 제13호, 제17호에 규정된 친일반민족행위로 결정했습니다.
친일반민족행위자가 얼마만큼 참회하고 사죄해야 일제로부터 해방된 민족의 국가에서 신성한 교육활동에 참여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설립자와 조기홍 전 이사장에게서 반성과 사과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법적 절차에 의해 친일반민족행위로 결정되었으면 그에 대해 반성과 사죄가 따라야 마땅할 것이지만 당시 성신여대 총장 심OO씨는 2009년 12월 28일 다른 5개 대학 총장들과 연명으로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보고서”의 시정을 요구하는 청원서를 대통령을 비롯한 교육과학기술부, 행정안전부 장관 등에 제출했습니다. 그리고 2011년 4월 12일에는 심용현 전 이사장의 흉상과 함께 설립자의 두번째 대형 동상이 세워졌습니다. 참으로 개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으며, 친일반민족행위 때문에 직간접적으로 피해를 보았을 분들께 송구스럽기 그지없는 행각입니다.
저는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이 아무런 참회나 사죄 없이 우리 성신학원의 이사장 등 핵심 요직을 지낸 사실에 대해서, 또 친일반민족행위로 결정된 데 대해 타당한 근거도 없이 시정을 요구한 행위 등에 대해서 성신학원 이사장 자격으로 친일반민족행위로 직간접적으로 피해를 보았을 모든 분들과 국민, 그리고 성신학원 구성원들께 깊이 사죄의 말씀을 드립니다. 또한 학살 사건과 마찬가지로 이 수치스러운 과오들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과 역사기록, 교육 등 응분의 조치가 뒤따라야 할 것입니다.
학원은 인간과 공동체를 사랑하는 민주시민으로서의 자질을 함양하는 민주국가의 보루입니다. 반민족, 반민주, 반인권, 반평화가 발을 들여놓아서는 안되는 진실과 정의의 전당입니다. 우상은 한 점 남김없이 철거되고 이성이 참 빛을 발하는 곳이어야 합니다. 학원이 제 구실을 하려면 모름지기 지난 시대의 잘못과 과오들에 대해 반성하고 참회하고 사죄해야만 합니다. 역사와 진실을 외면한 채 미래로 나아갈 수 없기 때문 입니다.
진정한 추도란 무엇일까요? 저는 고인들이 살아서 하지 못한 참회와 사죄를 대신하는 것이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 다. 그래야만 피해자들과 고인들이 안심하고 눈을 감을 수 있 을 것입니다.
진실을 바탕으로 한 참회와 사죄와 화해, 국가 차원에서와 마찬가지로 우리 성신학원 차원에서도 반드시 이루어야 합니다. 성신공동체는 유한한 개인을 넘어 지속되어야 하며 성찰과 화합 위에서 발전해야 합니다.
설립자 운정 선생의 영면을 기원하면서 인사말을 마칩니다.
2019년 6월 18일 학교법인 성신학원 이사장 황상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