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우성 탈북

유우성씨는 2004년 탈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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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우성 탈북

유우성씨의 국적은 중국이다. 하지만 북한에서 나고 자랐다.

경성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하고 북한에서 의사로 일하던 그는 2004년 탈북했다. 유우성씨는 비교적 빠르게 남한 사회에 자리잡았다.서울의 한 사립대 중문과를 졸업한 뒤, 2011년 서울시 복지정책과 계약직 공무원으로 취직했다.

언론에도 여러 번 소개될 정도로 주목받았던 유우성씨는, 새터민들에게 희망과도 같은 존재였다.

유우성 밀입북

탈북한 지 2년이 지난 2006년 5월,
유우성씨는 밀입북을 감행한다.

북한에 남아있던 어머니가 돌아
가셨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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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우성씨, 어머니 장례식 때문에 북한 방문

남한에 정착한 유우성씨지만, 어머니 장례식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유씨는 5월, 밀입북 해 닷새간 머무른 뒤 중국을 거쳐 서울로 돌아왔다.

이 때 유 씨는 여동생에게도 남한행을 권했다. 여동생 또한 가족과 함께 살고 싶다는 마음에 탈북을 결심했다.

"북한에서 남한 영화 보면서 한국 그런 곳이구나, 가서 살고 싶다. 그런 생각 계속 들었고, 크면서 꿈이 됐거든요."

"합신센터 인권유린 심각"

2012년 10월 24일

상당수 새터민들이 국정원 조사
과정에서 인권 침해를 받았다고
경기도가족여성연구원이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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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가족여성연구원 보고서

현행법에 따라 북한이탈주민은 최소 1주일에서 최장 6개월까지 합신센터에서 조사를 받게 된다. 이 과정에서 국정원 직원들로부터 반말에 욕설, 심지어 성희롱까지 당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경기도가족여성연구원이 도내 거주하고 있는 북한이탈주민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북한이탈주민 인권침해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45%에 달하는 북한이탈주민이 국정원 조사 과정에서 두려움과 불안감을 느꼈다고 대답했다.

유가려 합신센터 수용

2012년 10월 30일

유우성씨의 동생 유가려씨는 오빠의 도움으로 북한을 탈출해 합신센터에
수용되었다.

자세한 내용

유가려, 합신센터 수용

북한에서 나고 자랐지만 화교 신분인 유씨는 중국 여권을 가지고 있었다. 탈북자로 신고하기 위해서는 이를 숨겨야 했다. 오빠는 알고 지내던 국정원 직원에게 동생을 잘 부탁한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유가려씨는 그날 밤, 탈북자를 조사하는 국정원 중앙합동신문센터에 도착했다.

첫번째 자백

2012년 11월 5일

국정원 수사관의 폭행과 협박에
놀란 유가려씨는 수용 1주일
만에 첫 번째 자백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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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신센터 수용 7일째

"'너 화교지?' 해서 '아닙니다', 마지막까지 '아닙니다' 하다가 아줌마 수사관이 '너 아직도 아니야?' 갑자기 자기 앞에 책상에 있는 서류를 들고 와서 내 머리를 때리는 거예요."
"머리를 너무 맞아서 아팠거든요. 윙윙 소리가 나고, 다리 맞은 게 퍼렇게 되면서 서지도 못하고...나보고 일어나라 하니까 안 일어나면 또 발로 차고 때리고 하니까 할 수 없이 벽을 기면서 일어났어요."

그러나 국정원 수사관은 가혹행위를 당했다는 유가려씨의 말이 거짓이라고 주장했다.

두번째 자백

2012년 11월 20일

화교라는 사실을 자백한 지
보름 뒤, 유가려씨는 오빠가
밀입북했다는 확인서를 썼다.

자세한 내용

합신센터 수용 22일째

"오빠가 몇 번 들어갔냐 물어봐서 '한 번 밖에 없습니다. 어머니 돌아가시고 나서 마지막으로 장례식 참가하겠다고, 어머니 보겠다고 그 때 한 번 밖에 없습니다'라고 명백하게 얘기했습니다. 그런데 자꾸 아니라면서..."
"(오빠가 밀입북했다 자백했다는 국정원 수사관 말이) 믿어지지 않았어요. 한쪽으로는 너무 때리고 맞고 하니 공포스럽고...마지막에 버티다가 할 수 없이 허위진술을 하게 됐다."

세번째 자백

2012년 11월 21일

합신센터에 들어간 지 23일
유가려씨는 자신이 탈북자가
아닌 공작원이라고 자백했다.

자세한 내용

합신센터 수용 23일째

국정원 수사관으로부터 지속적인 압박을 받은 유가려씨는, 결국 자신이 평양국가안전보위부 부부장의 지령을 받고 들어온 공작원이라고 자백하게 된다.
저는 2011년 3월 초 국가보위부 부부장으로부터 중국에 들어가 오빠에게 연락해 오빠가 주는 자료를 받아오라는 임무를 받았습니다. 중국에 도착해 오빠가 보낸 자료를 확인했는데, 탈북자 명단 2개와 국가보위부 부부장에게 보낸 편지였습니다.
회령세관을 통해 북으로 들어가서, 마중 나온 부부장에게 USB를 전달했습니다. 2012년 10월 회령으로 찾아온 국가보위부 부부장을 만난 3일간 한국에 가기 위해 교육을 받았습니다.

-유가려씨의 자백 내용

유우성 체포

2013년 1월 10일

국정원은 유가려씨의 진술을 세밀하게
가다듬은 뒤, 유우성씨를 체포했다.

자세한 내용

유우성 체포

국정원은 세부적인 행위나 방법까지 정밀하게 맞췄다. 유가려씨는 몇 차례 증언을 번복했으나, '진술번복죄가 간첩죄보다 높다'며 압박했다.

결국 국정원은 유우성씨를 간첩혐의로 구속했다. 탈북자로서 처음으로 서울시 공무원이 된 유 씨의 체포소식에 탈북자 사회가 긴장했다.

하지만 유 씨에 대한 수사는, 그가 혐의를 송두리째 부인하면서 난관에 부딪혔다.

동아일보 단독보도

2013년 1월 21일

국정원 수사가 차질을 빚는 사이
동아일보가 '탈북 공무원 구속'
이라는 제목으로 단독보도했다.

자세한 내용

동아일보의 사건 단독보도

유우성씨는 일관되게 여동생의 허위진술이라며, (여동생과) 대질신문을 요구하며 버텼다.

그 사이 동아일보가 단독으로 '탈북자 1만명 정보를 북한에 통째로 넘긴 탈북공무원 구속'이라는 요지의 기사를 1면에 개재했다.

유우성씨의 변론을 맡은 민변은 유가려씨 접견을 요청했지만, 국정원은 허용하지 않았다.

증거보전재판

2013년 3월 4일

검찰은 여동생의 진술을 확고한
증거로 만들기 위해 증거보전재판
을 신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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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거보전재판

국정원으로부터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유가려씨의 진술을 확고한 증거로 만들기 위해 증거보전 재판을 신청했다. 검찰은 유가려씨가 법정이 아닌 영상증언실에서 진술하도록 했다. 오빠를 만나면 진술을 제대로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유우성씨를 볼 수 없도록, 피고인석을 비추는 모니터도 가렸다.

"오빠 좀 보게 해달라고 합판 치워달라고 했거든요. 그러니까 합판 치울 수 없다고, 그냥 하라고..."

179일만의 해방

2013년 4월 26일

합신센터 생활한 지 어느덧 6개월
유가려씨는 인신구제재판을 통해
마침내 합신센터를 나올 수 있었다.

자세한 내용

유가려 인신구제심판, 합신센터 나옴

유가려씨는 한 달 내에 출국하라는 강제출국명령을 받았다. 변호인단은 유가려씨를 합신센터에서 나오게 하기 위해 인신구제재판을 신청했다. 국정원은 유 씨의 이탈을 방해했다.

"가지마. 가지마. 일단 들어와. 네가 가게 되면 일이 복잡해져. 그렇게 하는 거 아니야. 일단 들어와. 계속 그 말을 반복했어요."

유가려씨는 4월 23일 긴급 기자회견 자리에서 자백을 강요받았다고 밝혔다. 유씨는 결국 합신센터를 나왔지만, 큰 고통을 호소했다.

세 번의 중국행

2013년 6월

유우성씨의 변론을 맡은 변호인단은 세 차례에 걸쳐 중국을 방문했다.

자세한 내용

세 번의 중국행

유우성씨의 변론을 맡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소속 변호사 3명은 현장 조사를 위해 세 차례 중국을 방문했다.

이들은 유우성씨의 행적을 추적해 검찰의 기소 내용에 반박할 수 있는 자료를 확보했다. 새로운 증거들 앞에서 검찰은 공소장을 수 차례 변경할 수밖에 없었다.

국정원 수사관 만나다

2013년 6월

재판을 위해 법원을 찾은 국정원 수사관들이 뉴스타파 카메라에 포착됐다.

자세한 내용

국정원 수사관을 만나다

합신센터에서 유가려씨의 허위자백을 이글어 낸 국정원 수사관들이 증인으로 참석하기 위해 법원을 찾았다.

뉴스타파 취재진을 만난 이들은 질문에 대해 똑같은 답변을 되풀이하거나 회피하기 바빴다.

(국정원에서 오셨죠?)"아니요."
"초상권 침해라고요."
"지금 초상권 침해로 명함 주십시오."

유가려 출국

2013년 7월 3일

유가려씨는 중국으로 돌아갔다.
오빠와는 7달 만에 구치소에서,
그것도 잠깐 만날 수 있었다.

자세한 내용

유가려 출국

"내일 또 오겠다는데 오지 말라고...보는게 더 가슴아프다고..."

결국 유가려씨는 오빠가 나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떠났다.

간첩 혐의 무죄

2013년 8월 22일

서울중앙지법은 검찰의 공소내용 중
국가보안법 위한 사실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자세한 내용

유우성 간첩 혐의 무죄

"...수사관들의 법정진술에 의하면 유가려가 폭행, 협박 및 가혹행위를 당했거나 세뇌 또는 회유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자유롭게 진술한 사실이 넉넉히 인정됩니다."
"...그러나 객관적인 증거의 명백히 모순되는 부분이 존재하고 진술의 일관성, 함의성의 측면에서도 의문이 듭니다. 따라서 공소사실을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이 인정하기 부족하여 유우성 피고인의 국가보안법 위반 관련 공소사실에 대해 무죄를 선고합니다. 북한 이탈주민 보호법 위반 부분, 여권법 위반 부분에 대해서는 징역 1년, 집행유예 1년을 선고해 유우성 피고인을 석방합니다."

이범균 부장판사 / 서울중앙지방법원 제 21형사부

항소심 시작

2013년 10월 2일

국정원과 검찰은 유가려씨의
진술이 신빙성 있다고 믿는다.
유우성씨의 간첩혐의를 입증
하기 위한 항소심이 시작됐다.

자세한 내용

항소심 시작

검찰은 국정원으로부터 영사증명서에 첨부된 출입경기록을 받았다.

이를 토대로 간첩혐의를 입증할 수 있다고 자신한 검찰과 여전히 무고함을 호소한 유우성씨측의 항소심이 시작되었다.

검찰은 국정원과 공조해 출입경기록과 사실조회서 등을 증거로 제출했다.

위조공문서 의혹

2013년 12월 6일

검찰이 출입경기록을 증거로 제출
한 이 날, 뉴스타파의 위조공문서
보도가 나오면서 논란이 시작됐다.

자세한 내용

검찰, 위조공문서 제출 의혹

검찰은 출입경기록을 증거로 제출하면서 이 기록이 '중국 공안당국에 발급을 요청해 중국 화룡시공안국을 통해 받은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뉴스타파의 현지 취재 과정에서, 검찰이 제출한 문서가 위조된 것이라는 의혹이 증폭됐다. 화룡시 공안 관계자들은 '출입경기록을 발행할 권한은 연변주 공안국에 있기 때문에 자신들은 발행할 수도 없다'고 답변했다.

검찰은 화룡시 공안국 명의의 사실조회서를 제시하며, 공식기록이 맞다고 반박했다.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 2심에서 위조의혹 중국 공문서 증거 제출
- 뉴스타파

공문서 위조 확인

2014년 2월 15일

주한중국대사관 영사부가 서울고등법원에 출입경기록 등 3건의 문서는 모두 위조된 것이라 사실조회서를 제출했다.

자세한 내용

중국정부 공문서 위조 확인

검찰은 유우성씨의 밀입북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중국 화룡시 공안국이 발행했다는 ‘출입경기록’과 사실확인서 등을 서울고등법원 재판부에 제출한 바 있다. 그러나 이 문서들은 유우성씨 가족이 정식으로 발급받은 ‘출입경기록’과 다르게 변조된 의혹이 있어 유씨와 변호인단은 조작의혹을 제기해왔다.

주한 중국 대사관 영사부는 2월 13일 ‘중국의 관련 기관을 통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을 입증하기 위해 검사측에서 제출한 3건의 문서는 모두 위조된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정부, 한국 검찰 제출 중국 공문서 ‘위조’ 확인
-뉴스타파